LG 가전, 美 월풀 넘어 세계 1위 됐다

입력 2019-07-30 17:46   수정 2020-11-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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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세계 1위 가전회사’에 등극했다. 올 상반기 생활가전사업(TV 제외)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세계 최대 업체인 미국 월풀을 제쳤다. 지난해 월풀의 청원으로 발동된 미국 정부의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등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실적 추월에 성공한 만큼 의미가 더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전자는 올 상반기 H&A(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사업본부가 매출 11조5687억원, 영업이익 1조4451억원(이익률 12.5%)을 기록했다고 30일 발표했다. 월풀의 상반기 실적(매출 11조3982억원, 영업이익 5203억원)을 뛰어넘었다. LG전자 H&A사업본부가 월풀의 매출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LG전자 H&A사업본부 매출이 19조3620억원으로, 월풀(23조1470억원)에 훨씬 못 미쳤지만 올 들어 건조기 의류관리기(스타일러) 공기청정기 등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역전에 성공했다.

LG전자 H&A사업본부는 2017년 영업이익에서 월풀을 추월했다. 하지만 매출 기준으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가진 월풀을 따라잡지 못했다. LG전자는 “스타일러 등 신(新)가전 판매를 늘리고 원가 구조를 개선한 게 실적 호조의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LG전자는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한 시장)으로 불리는 생활가전 부문에서 매년 실적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전자업계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 △부품 내재화 및 모듈러 디자인을 통한 생산성 혁신 △신가전을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 등을 비결로 꼽는다. LG전자 관계자는 “10년 앞을 내다보고 모터와 컴프레서 등에 투자하고 부품 표준화를 통해 제조업의 핵심인 수익성을 끌어올렸다”며 “당장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꾸준히 신제품을 발굴하면서 씨앗을 뿌린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생활가전 글로벌 1위’ 도약 3대 비결은…
(1) 부품기술 장기 투자
(2) 新가전 시장 선도
(3) 프리미엄 시장 공략


4.6%, 3.0%…. 글로벌 ‘톱3’ 생활가전 기업인 미국 월풀과 스웨덴 일렉트로룩스의 올 상반기(1~6월) 영업이익률이다. 제조업 중에서도 생활가전 부문은 ‘규모의 불경제’가 작동하기 쉬운 분야로 꼽힌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 매출은 늘어나지만, 수익성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어서다. 똑같은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면 되는 TV, 스마트폰과 달리 해외 각국에서 팔려면 여러 국가의 주거 환경 및 문화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기능에 대한 소비자들의 개성이 다양해지면서 관리해야 하는 제품 모델 수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생활가전 사업이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한 시장)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LG전자는 이런 시장에서 올 상반기 12.5%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10년 앞을 내다본 기술 투자와 모듈러 디자인을 통한 공정 효율화, 프리미엄 전략과 신(新)가전의 힘이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모터·컴프레서에 장기 투자

높은 수익률의 첫 번째 비결로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주도로 가전 전반에 적용한 ‘모듈 생산 방식’이 꼽힌다. LG전자는 2000종이 넘는 세탁기 모델을 생산해 160개국에 판매한다. 세탁기 한 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 수만 300여 개다. 세탁기 모델마다 서로 다른 부품을 쓴다고 가정하면 생산·관리해야 하는 부품 종류는 60만 개로 늘어난다.

LG전자는 각종 생활가전에 들어가는 부품을 표준화하고 몇 가지 독립된 패키지로 조합하는 모듈 생산 방식을 적용했다. 부품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1980~1990년대 포드, 도요타자동차 등이 시작한 작업을 벤치마킹했다. 2009년 세계 가전업계에서 처음으로 모듈 공정을 세탁기 생산라인에 적용했다. 조 부회장이 가전사업을 총괄하게 된 2013년부터는 모든 가전제품에 확대하기 시작했다.

LG전자는 가전제품을 구성하는 부품을 △모터 등이 포함된 구동 모듈 △조작부와 디스플레이창을 주축으로 한 기능 모듈 △제품 디자인을 결정하는 외관 모듈 등 세 가지로 나눠 표준화했다. LG전자가 생산하는 24인치 드럼 세탁기는 하나의 구동 모듈에 외관 모듈 6종을 적용하고, 또 여기에 각기 다른 8인치 기능 모듈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48종의 모델을 만들어낸다. 모듈화 디자인 적용 이후 세탁기는 2009년에 비해 제품당 생산시간이 40%, 생산라인 길이는 절반으로 줄었다.

1962년 선풍기용 모터를 생산한 것을 시작으로 57년 동안 모터와 컴프레서(압축기)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늘렸다. 가전제품의 경쟁력은 모터·컴프레서 등 핵심 부품에서 나온다는 판단에서다. LG전자 모터·컴프레서 분야 연구개발 인원은 3년 전인 2016년보다 약 30% 증가했다.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도 3년 전에 비해 30% 가까이 늘었다.

신가전과 프리미엄 제품의 힘

이렇게 축적한 모터·컴프레서 기술은 LG전자가 신가전을 통해 시장을 확장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세상에 없던 가전’을 개발하는 데에는 비용과 시간을 아끼지 않은 고집도 장기적으로 수익에 보탬이 됐다. 9년간 개발해 2011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스타일러는 의류관리기라는 새 시장을 창출했다.

8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2015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트윈워시’는 세계적으로 일반 명사가 됐다. 미국 백화점 시어스 온라인몰에서는 세탁기 종류를 톱로더(통돌이 세탁기), 프런트로더(드럼 세탁기), 트윈워시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LG전자는 가구형 가전, 수제맥주 제조기 등 신가전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초(超)프리미엄 브랜드 LG시그니처, 빌트인 주방 가전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등으로 ‘LG전자=프리미엄’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굳힌 점도 먹혀들었다.

지난해 월풀의 청원으로 발동된 미국 정부의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월풀의 매출을 추월할 수 있었던 데는 프리미엄 이미지가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랙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900달러 이상 세탁기 시장 점유율이 LG전자는 27%에 달한 반면 월풀은 10%에 그쳤다.

고재연/황정수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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