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자 30만명 늘었지만…대부분 '단기 노인알바'

입력 2019-08-14 17:38   수정 2020-11-10 15:46


지난달 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29만9000명 늘어 석 달 연속 20만 명대 증가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실업자(109만7000명)는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재정 투입으로 창출된 ‘노인 단기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반면 30~40대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경제 허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이 14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29만9000명이 증가했다. 2018년 1월(33만4000명) 후 1년6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반면 실업자와 실업률(3.9%)도 각각 외환위기 때인 1999년과 2000년 이후 최고치였다. 청년(15~29세) 실업률 역시 9.8%로 1999년(11.5%) 후 가장 높았다.

근로시간과 연령별로 보면 1~17시간 일자리가 1년 전보다 17.9%(28만1000명) 급증하면서 전체 취업자 증가폭의 94%를 차지했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37만7000명 늘어난 반면 40대는 17만9000명 감소했다. 고용의 질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용 착시' 여전…노인 일자리 38만명 늘 때 40대 18만명 줄었다

지난해 말 정부는 2019년 한 해 동안 공공일자리 96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단기 일자리를 공급해 연중 이어졌던 ‘고용 참사’의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관련 예산도 전년(3조2000억원) 대비 6000억원 가까이 늘려 잡았다. 하지만 “고용 지표 착시만 유발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많았다. 단기 일자리 대부분이 강의실 전등 끄기, 침대 라돈 측정처럼 ‘땜질식’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우려는 14일 통계청의 ‘7월 고용동향’을 통해 현실로 드러났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9만9000명 늘었다. 겉으로는 지난해(5000명 증가)보다 크게 개선된 결과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늘어난 일자리 대부분(28만1000명)이 ‘초단시간 일자리(1~17시간)’였다. 제조업 등 민간의 질 좋은 일자리는 급감했다.

‘노인·단기 알바’만 급증

지난달 전체 취업자 증가를 이끈 건 60세 이상 노인(37만7000명)이었다. 이 중 65세 이상 취업자 수 증가폭이 21만1000명에 달했다. 노인 취업자 증가가 전체 취업자 증가폭을 크게 웃도는 현상은 올해 들어 계속되고 있다.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가 대부분 노인에게 공급된 영향이다. 반면 경제의 허리인 40대 취업자는 17만9000명 줄었다. 2015년 11월 이후 45개월 연속 감소다.

청년층(15~29세) 고용 사정도 녹록지 않았다. 올 들어 청년층 실업률이 매달 변덕을 부릴 때마다 통계청은 “공무원 시험 시기가 작년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공시생들은 시험 원서를 낼 때 경제활동인구가 돼 실업자로 잡힌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 기저효과’를 걷어낸 지난달 청년층 실업률은 9.3%로 전년 동기 대비 0.5%포인트 급증했다. 7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9년(11.5%) 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청년층 고용률(43.6%→44.1%)이 오르긴 했지만 이 역시 단기 일자리 취업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취업시간이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는 78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2만6000명 늘었다. 더 일할 수 있지만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저임금 인상에 타격을 받은 소상공인들이 주휴수당을 아끼려고 아르바이트 한 명을 초단기 근로자 두 명으로 나눠 고용하는 ‘쪼개기 알바’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취업자 총량 자체는 증가했지만 뜯어보면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가 늘고 제조업 등 양질의 일자리는 줄었다”며 “고용시장 전반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속이 곪아가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사라지는 ‘좋은 일자리’

업종별로 보면 고용의 질 악화는 더욱 확연해진다. 지난달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취업자는 14만6000명 늘었다. 정부 재정이 주로 투입되는 분야다. 반면 제조업 취업자는 9만4000명 줄었다. 통계 작성 후 역대 최장 기간(16개월) 연속 감소세다.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도·소매업 취업자 수가 8만6000명 줄어든 것도 제조업 취업자 감소 영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작년부터 시작된 자동차·조선 분야 고용 부진이 올해는 반도체 침체 여파로 전자부품·전기장비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한·일 무역분쟁이 장기화하면 대기업보다 경기변동에 취약한 하청·중소기업 종사자 고용이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의 형편이 나빠지면서 ‘단기 알바’ 공급까지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종업원을 둔 자영업자 수는 13만9000명 줄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업원 없이 혼자 장사하는 ‘나홀로 자영업자’는 11만3000명 늘었다.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종업원을 내보내고 1인 영세 사업자로 전락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표만 교란하는 재정투입 지양해야”

고용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기 일자리 정책과 같은 재정 투입을 줄이고 생산성 향상 등 본질적인 해결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12일 여야 국회의원실에 배포한 보고서에서 “직접 일자리는 일시적 역할만 수행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직접 일자리 사업에 대한 세부 평가를 공개하고 비중을 점차 줄여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이 꺾이고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면에서 정부가 일시적 재정 투입을 통해 고용을 개선하기는 어렵다”며 “규제 합리화나 투자 촉진 대책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부터 일자리를 늘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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