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무성, 제24회 춘사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귀향하다

입력 2019-08-23 12:00  


|제24회 춘사영화제 조직위원장 맡아 “영광스러운 자리”
|영화 ‘귀향’ 통해 정체성 되찾아
|민족 영화제를 국제 영화제로 발전시키고 싶어
|한민족(韓民族)은 하나의 민족이었어

[김영재 기자 / 사진 bnt포토그래퍼 설은주] 제24회 춘사영화제 주인공은 영화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은 그랑프리인 감독상을 비롯, 각본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까지 총 4개 부문을 석권하며 프랑스 칸발(發) 훈풍이 당분간 지속될 것을 예고했다.

한편, 영화제는 다른 ‘주인공’에게도 귀를 기울였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지원 시설인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영화 ‘에움길’에게는 다큐멘터리 작품상이 주어졌다. 정무성 춘사영화제 조직위원장은 “‘귀향’ 제작진이 만든 영화”라며, “‘귀향’으로 영화계에 처음 발을 디뎠기에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계속 관심이 가더라”고 말했다.

이번에 새롭게 조직위원장을 맡은 정무성은 배우 겸 제작자다. 또 하나. 그는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 한국인이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으로 한국에서는 ‘반(半) 쪽발이’로 불렸어요. 그런 제가 온전히 ‘한국 사람’으로 서 있는 시간은 한국 영화가 유일했습니다. 조국에 돌아온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제게 춘사 조직위원장은 과분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귀향’에서 그는 일본군 장교 기노시타 역을 맡았다. 일본군이 성노예 소녀들을 불로 태우는 순간을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의 재현은 그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기기도. 그럼에도 정무성에게 ‘귀향’은 운명이었다. 번역은 물론, 제작비 투자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주위에서 사기 당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만큼 제작 사정이 좋지 못했다”며,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에 일조한다는 것과 내가 한국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서로 등가로 느껴지더라.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많은 재일 한국인·조선인이 일본 영화계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과 별개로 그는 배우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귀향’을 만나기 전만 해도 식당·부동산업을 하는 비(非)영화인이었다. 하지만 장교 역은 “처음부터 정무성”이라는 조정래 감독의 고백에 그 제안을 수락했단다. 일주일 먼저 개봉한 영화 ‘동주’와 함께, ‘귀향’은 일제 강점 아래 아스러지고 만 그 시대 젊은 영혼을 고이 기억토록 했다. 당연히 충무로가 정무성을 주목했다. 이에 그는 영화 ‘박열’의 후시 녹음에 참여했고, ‘에움길’과 9월 개봉 예정인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에서는 일어 검수를 맡았다. 영화 ‘소리꾼’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허나 그는 “스타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 마음과 유명해지고 싶은 것은 서로 별개입니다. 제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그 뜻만 보고 참여한 ‘박열’과 ‘귀향’이 그 예시죠.”

그래서 항일 운동가이자 그 저항 의식을 영화 ‘아리랑’으로 드러낸 춘사 나운규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0년 한국영화감독협회가 개최한 춘사영화제는 정무성의 또 다른 운명이다. 그는 “영화제 수상작 최종 결정에 참여하신 조정래 감독님 및 감독협회 임원 분들과의 인연으로 조직위원장이 됐다”며, “공정한 심사 그리고 춘사영화제의 국제영화제로의 발전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24회 춘사영화제는 홍콩·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영화인의 참가는 물론, 춘사 아시아 어워즈를 신설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의 도약’을 내건 지난 영화제에 이어 세계 속 춘사영화제를 다시 목표했다.


재일 교포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 한국인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지역을 가리키는 재일 조선인이다. 그리고 조선적(朝鮮籍) 재일 교포가 한국에 오는 데 필요한 여행 증명서가 보수 정권 하에서는 안보 문제를 이유로 발급률이 40% 대까지 떨어진 것과 관련, 모두가 입 모아 이야기하는 바는 ‘재일 교포 문제는 국적이 아닌 민족으로 접근해야 한다’이다. 한민족(韓民族)이라는 것이다. 영화 ‘고지전’을 ‘인생 영화’로 꼽은 정무성 역시 한국 전쟁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규정하며 하나의 민족을 강조했다.

역사가 잉태한 한국인, 재일 교포. 역사를 부모로 둔 그가 춘사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서 과연 어떤 ‘역사’를 그려 나갈지 사뭇 궁금하다. “제가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계속 집중하는 이유요? 일제 강점 전에 우리는 하나였잖아요. 재일 교포가 탄생한 이유도 일제 강점에 있고요. 6.25도, 우리 피해자 할머니 분들도, 저도 모두 역사의 결과물이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뿌리를 찾아 계속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 결의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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