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변호사의 바른 상속 재테크] (44) 유산으로 받은 땅을 누군가 공짜로 쓰고 있다면?

입력 2019-08-20 14:21   수정 2019-08-20 14:25


<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7다289040 판결 : 추심금>

Ⅰ. 사실관계

유언자 A씨는 1971년 10월 16일 사회복지법인(피고 법인)을 설립해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법인을 운영했다. 해당 사회복지법인은 1987년 7월 31일 A씨의 토지에 건물을 세웠지만 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값을 치르지 않았다. A씨는 건물이 들어선지 7년 정도가 흐른 1994년 토지를 종친회에 넘겨주겠다고 유언하고 1999년 11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종친회는 2001년 4월 11일 A씨의 유언대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종친회로부터 받을 돈이 있었던 원고는 한다리 건너에 있는 사회복지 법인에 빚을 대신 갚으라고 소송을 냈다. 피고 법인이 토지 사용료를 내지 않고 건물을 올려 사용했으니 그 돈을 받겠다는 계획이었다. 원고는 이미 종친회의 부당이득반환채권(밀려있던 토지 사용료)에 대해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아냈다.

이에 대하여 피고 법인은 A씨가 생전에 토지를 무상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 데다 수증자인 종친회는 민법 제1085조에 규정된 것처럼 토지에 관한 피고 법인의 권리를 소멸시키는 청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민법 제1085조는 “유증(유언으로써 자기 재산의 일부를 무상으로 타인에게 주는 행위)의 목적인 물건이나 권리가 유언자의 사망 당시에 제3자의 권리의 목적인 경우에는 수증자(유산을 받는 사람)는 유증의무자에 대하여 그 제3자의 권리를 소멸시킬 것을 청구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유언자가 다른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유증의 목적물을 유언의 효력발생 당시의 상태대로 수증자에게 주는 것이 유언자의 의사라는 점을 고려하여 수증자 역시 유증의 목적물을 유언의 효력발생 당시의 상태대로 취득하는 것이 원칙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증의 목적물이 유언자의 사망 당시에 제3자의 권리의 목적인 경우에는 그와 같은 제3자의 권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증의 목적물이 수증자에게 귀속된 후에도 그대로 존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파기환송

Ⅲ. 해설

1. 유증목적물에 대한 담보책임

증여는 무상행위이므로 증여 목적물에 어떠한 권리나 물건의 하자가 있더라도 증여자는 담보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제559조 제1항). 그러나 유증의 경우에는 유증의무자에게 담보책임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즉 불특정물(예컨대 곳간에 있는 쌀 중 1가마)을 유증의 목적으로 한 경우에 유증의무자(일반적으로 상속인이다)는 그 목적물에 대하여 매도인과 같은 담보책임이 있다. 그리고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때에는 유증의무자는 하자 없는 물건으로 인도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제1082조). 불특정물 유증의 경우에는 유증의무자로 하여금 수증자에게 완전한 물건을 주도록 하는 것이 유언자의 의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물(예컨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유증의 경우에는 이러한 담보책임을 부담시키지 않는다. 유증목적물을 현상 그대로 주려는 것이 유언자의 일반적인 의사이고, 수증자로서도 유언자가 보유하고 있던 상태 그 이상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물건의 하자와 권리의 하자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증목적물인 특정물에 물건의 하자가 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증여에 준하여 담보책임을 지지 않는다(제559조 유추적용).

둘째, 권리의 하자 중 소유권의 하자가 있는 경우, 즉 유증목적물이 유언자의 사망 당시에 상속재산에 속하지 않고 제3자에게 속하는 경우에는 유언이 그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역시 담보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제1087조 제1항).

셋째, 권리의 하자 중 소유권 이외의 하자가 있는 경우, 즉 유증목적물 자체는 유언자 사망 당시에 상속재산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제3자의 권리의 목적이어서 완전한 소유권을 이전할 수 없는 경우에는 수증자는 유증의무자에 대하여 그 제3자의 권리를 소멸시킬 것을 청구하지 못한다(제1085조). 다만 제1085조는 임의규정이므로 유언자가 유언으로 다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에 의한다(제1086조).

2. 제3자의 권리의 목적인 물건 또는 권리의 유증(제1085조)

이 사건은 특정물 유증에 관한 위 세 가지 분류 중에 세 번째에 해당된다. 즉 특정물인 토지 자체는 유언자 사망 당시에 상속재산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제3자인 피고 법인의 권리(사용차주로서의 권리)의 목적인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 수증자는 유증의무자에 대하여 그 제3자의 권리를 소멸시킬 것을 청구하지 못하는데(제1085조), 이때 ‘제3자의 권리’가 물권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채권도 포함하는 것인지에 관하여 견해의 대립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용익물권, 담보물권과 같은 제한물권뿐만 아니라, 임차권 그 밖에 유증목적물에 붙어 있는 각종의 채권이 모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대상판결 역시 그와 같은 전제에서 채권인 사용차주로서의 권리도 제1085조에서 규정하는 제3자의 권리에 포함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제1085조는 유증목적물에 관한 제3자의 권리가 물권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조문이라고 하면서, 대상판결은 공시되지 않는 제3자의 채권을 유증이라는 우연한 사정에 의해 소유권에 우선하는 강력한 권리로 만들고 있다며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제1085조는 수증자와 유증의무자간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한 조문일 뿐 수증자와 제3자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조문은 아니라고 하면서, 대항력 없는 채권만을 가지고 있었던 수증자가 유증이라는 외부적 사태를 계기로 본래 없던 대항력을 갑자기 취득한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비판하는 견해도 있다.

3. 결론

제3자의 권리에는 물권 뿐 아니라 채권도 포함된다고 보는 통설과 판례의 태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유증은 증여와 마찬가지로 수증자만이 이익을 얻는 무상행위이므로 유상계약에서와 같은 담보책임을 유증의무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지나치다. 특히 증여의 의사표시를 한 자와 증여할 의무자가 분리되는 유증의 경우에는 더욱 더 가혹하다. 만약 제3자의 권리에 채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면 수증자가 유증의무자에 대하여 제3자의 채권을 소멸시킬 것을 청구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러한 청구에 따라 유증의무자가 제3자의 채권을 소멸시킬 경우 제3자는 유언자의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유증의무자(상속인)에게 채무불이행책임을 추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상속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② 제1085조는 제3자의 권리를 물권으로 제한하고 있지도 않고 대항력 있는 권리로 한정하고 있지도 않다. 그와 같이 제3자의 권리를 폭넓게 규정한 이유는, 유증과 같은 무상행위의 경우에는 수증자에게 유증목적물에 붙어 있는 부담을 그대로 수인토록 하더라도 부당하지 않고, 그러한 유증을 받기를 원치 않는 수증자는 언제라도 유증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제1074조).

③ 유언자가 다른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사망 당시 상태 그대로의 물건을 유증하고자 하는 것이 통상적인 유언자의 의사라고 보아야 한다. 유언자가 이와 다른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 한하여 제3자의 권리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이다(제1086조).

이 사건은 특정물 유증에서 담보책임이 문제된 최초의 사건이며, 대상판결은 민법 제1085조의 해석론에 관한 최초의 판결로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

- 고려대 법과대학 졸업

- 고려대 법학석사(민법-친족상속법) 전공

- 고려대 법학박사(민법-친족상속법) 전공

-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Law School 졸업(Master of Laws)

- 서울대 금융법무과정 제6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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