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의회예산국(CBO)이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주도하는 무역전쟁에 일제히 경보음을 울렸다. 고율 관세 부과가 무역적자를 줄이지 못할 뿐 아니라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늘리고 기업 투자를 줄여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타 고피나트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IMF 연구원 두 명과 공동 작성한 블로그에서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상대국이 무역 거래처를 바꾸기 때문에 전체적인 무역 불균형이 줄어들긴 어렵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고율 관세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반면 기업 투자는 줄이고 글로벌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려 미국 및 세계 경제 성장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통화가치 절하를 위한 어떤 계획도 비효과적이라며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통화가치를 낮추려고 중앙은행을 압박하는 데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 목표를 밑도는 물가상승률에 직면한 많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통화정책을 완화하면서 이른바 근린궁핍화 정책(다른 나라를 궁핍하게 만들어 자국 경제를 살리려는 정책)과 환율전쟁의 우려와 공포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AFP통신은 “IMF가 이례적으로 직설적 표현을 사용했다”며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미 달러화 약세를 위해 미 중앙은행(Fed)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고피나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월에도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와 관련해 “중국이 아니라 미국 소비자와 기업이 (관세를) 부담해왔다”며 “미국과 중국의 소비자들은 분명 무역갈등의 루저(패자)”라고 비판했다.
미 CBO도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관세를 포함한 무역장벽이 높아지면서 미국 경제가 둔화하고 가계소득이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작년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관세 때문에 관세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약 0.3%, 가구당 실질소득은 평균 580달러(0.4%)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무역정책이 경제 활동, 특히 기업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며 “추가적인 관세 인상은 경제 성장을 억누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은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 경제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다는 백악관의 주장과 배치된다”고 꼬집었다.
CBO는 이어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 등으로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올해 9600억달러에 달하고 내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또 향후 10년 동안 미국 재정적자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8000억달러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2020년부터 2029년까지 연평균 1조2000억달러를 기록할 것이란 예측이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는 전날 미국이 중국 제품에 다음달 1일부터 10%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 미국 가구당 연간 1000달러(약 120만원)의 비용 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관세율이 25%로 올라가면 가구당 부담은 연간 1500달러(약 180만원)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관세 여파로 미국 경제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소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2500억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9월 1일과 12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총 3000억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유럽과 한국, 일본 등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에도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국인들의 경제 인식도 나빠지고 있다. 미 CNN이 지난 15~18일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5%가 “현재 경제 상황이 좋다”고 답변했다. 5월 조사 때보다 5%포인트 낮은 수치다. 또 “향후 1년간 경제 상황이 좋을 것”으로 본 응답자는 56%로 작년 12월 조사 때(66%)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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