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손만두’라는 인기 있는 식당이 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간단히 한끼를 해결하기에 좋은 식당이다. 2010년 서울 인사동에 본점을 연 뒤 수제 만두, 신선한 만두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지금은 거대 프랜차이즈로 성장했고, 만두의 세계화를 꿈꾸며 해외진출과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북촌손만두의 성공 비결은 뭘까.
매일 직접 만드는 손만두, 신선한 품질, 착한 가격 등이 이유겠지만, 메뉴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메뉴는 크게 ‘만두류’와 ‘식사류’다. 모든 메뉴가 ‘밀가루 음식’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업 성공을 위해서는 핵심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뛰어들어야 한다. 또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야 하는데, 북촌손만두가 그렇다. 이 가게는 ‘밀가루 반죽 기술’이란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메뉴를 다각화해 성공할 수 있었다.
필자가 여러 번 얘기한 핵심역량이란 단어의 정의는 뭘까. 쉽게 말해 ‘이전 가능한 역량’이다.
혼다는 ‘모터’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다. 그런데 ‘모터 기술’이라는 핵심역량을 모터사이클, 자동차, 제트스키, 스노모빌, 잔디 깎는 기계, 로봇 산업으로 확장해 성공했다. 북촌손만두도 ‘밀가루 반죽 기술’이란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메뉴를 개발해 성공한 것이다. ‘밀가루’와 관련성이 없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의 메뉴는 아예 없다.
후지필름 역시 핵심역량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 성공할 수 있었다. 후지필름은 140년 역사의 필름업체 아그파가 도산하고, 100년 기업 코닥이 몰락할 때도 살아남은 혁신기업이 됐다. 후지필름은 필름에서 쌓은 기술로 화장품, 제약, FPD평판디스플레이 재료 등에 진출했다. 그 결과 2014년에 2조4930억엔(약 23조66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컬러필름 역사상 최대 호황이었던 2000년 1조4403억엔(약 13조6700억원)보다 73.1% 많은 액수다. 2000년 사장으로 취임한 고모리씨는 후지필름이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필름 이외 사업’을 찾았는데, 핵심사업 기반의 인접사업을 구상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그 유명한 4분면 분석법이다. 시장과 기술을 X·Y축으로 설정한 뒤 X축 가로선은 기존 시장과 새 시장으로, Y축 세로선은 기존 기술과 새 기술로 구분했다. 즉 ‘기존 기술로 기존 시장에 적용하지 않은 것’ ‘기존 기술로 새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것’ ‘새 기술로 기존 시장에 적용할 것’ ‘새 기술로 새 시장을 열 수 있는 것’을 혁신의 기준으로 삼았다.
첫 시도는 화장품 사업이었다. 필름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콜라겐을 사람 피부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후지필름은 2007년 9월 콜라겐을 통한 피부재생을 내세워 아스타리프트라는 브랜드를 출시해 대성공을 거뒀다. 필름 기술을 응용한 LCD용 TAC 필름 사업에도 뛰어들어 삼성, LG 등 글로벌 LCD 메이커들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후지필름은 혁신을 통해 전혀 다른 회사로 탈바꿈했다. 신규 사업 진출의 실패 확률은 핵심역량에서 멀어질수록 높아진다. 먼저 현재의 업종에서는 더 이상 성장 기회가 없는지를 검토한 뒤 후지필름처럼 새 기술로 새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질문을 하나 던지겠다. 여러분이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을 경영해서 크게 성공해 이익잉여금이 넘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럼 그 돈으로 기존 커피사업을 강화하겠는가, 신사업에 투자하겠는가. 신사업에 투자한다면 어떤 사업에 진출하겠는가. 커피와 연관된 사업인가, 업종이 전혀 다른 새로운 사업인가.
질문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생각된다. 잘나가던 카페베네는 레스토랑·드러그스토어·제과점 사업에 무리하게 진출했다가 연이어 실패했다. 2010년대 초 커피 프랜차이즈 1위까지 올랐던 성공신화가 막을 내리고 말았다. 전략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카페베네는 차별화 전략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선점한 스타벅스나 비용우위 전략으로 저가시장을 잡은 이디야처럼 명확한 포지셔닝을 구축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커피 맛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카페베네는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 소비자 대상 커피전문점 만족도 조사의 맛 항목에서 5위를 차지했다. 커피 ‘맛’이라는 핵심역량을 강화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는데, 사업 확장에만 치중한 것이다. 카페베네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이 돈을 벌면 핵심사업을 강화하기보다는 관련성이 적은 사업을 벌이다 위기에 빠지곤 한다.
소니와 야후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소니는 원래 하드웨어에 강한 회사였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도 강한 기업을 목표로 삼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1989년 미국 콜롬비아픽처스엔터테인먼트를 사들여 영화사업에 뛰어들었고, 2004년에 MGM을 인수하는 등 거액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자금이 계획대로 돌지 못하면서 재무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는 연구개발(R&D) 투자 감소로 이어지면서 결국 소니의 자부심이던 ‘기술력’을 끌어내렸다. 1990년대 인터넷 세계를 주름잡았던 야후도 미디어 분야에 한눈을 팔다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야후는 검색 업체에서 콘텐츠 중심의 미디어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무리하게 기업을 인수했다. 그 결과 본업인 검색 사업에 소홀하면서 구글에 검색시장의 왕좌를 내주고 말았다. 이런 기업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주객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크리스 주크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저서 <핵심에 집중하라(Profit from the Core)>에서 “대부분의 핵심사업이 최대 잠재력보다 낮은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고, 핵심사업의 최대 잠재력 달성을 위해 투자될 수 있었던 자원을 비관련 저성과 사업에 낭비한다”고 우려했다. 물론 다른 사업 진출이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무조건 핵심역량 기반의 다각화만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세상 일이 모두 이론에 따라 돌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훌륭한 이론은 비즈니스에서나 우리의 인생 전반에서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준다.
이재형 피플앤비즈니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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