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표가 지렁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3년이다. 부모님의 병수발을 위해 귀향한 지 1년 뒤였다. 10년 만에 돌아온 고향의 산천은 옛날 그대로였지만 졸업한 초·중·고교는 모두 폐교됐다. 마을은 빈집이 늘며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 위험이 가장 높은 곳이 의성이라고 들어왔지만 고향마을의 변화를 직접 마주한 김 대표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약 30가구가 사는 마을의 친구들과 미래를 고민하던 김 대표는 장인의 권유로 지렁이 사업을 시작했다. 지렁이를 키우겠다고 하자 동네 어른들의 반응은 “지렁이를 키워서 어디에 팔려고” “돈이 되겠냐”였다. 당시만 해도 지렁이를 사육하는 농가는 전국에 20농가뿐이었다. 지렁이 공부를 시작한 김 대표는 지렁이의 쓰임새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고 이를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했다. 2013년 매출은 850만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5억여원, 올해는 7억여원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사육한 지렁이는 대부분 화장품회사에 원료로 납품된다. 또 지렁이 먹이가 되는 음식물쓰레기와 하수처리장의 슬러지를 처리하면 여기서도 수익이 발생했다. 지렁이가 슬러지를 먹고 나면 생기는 1000t 가까운 분변토는 마을의 26개 농가에 무료로 공급된다. 분변토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먼저 마을의 친환경농사에 쓰고 나머지만 판매한다. 2013년 2개뿐이던 친환경농가가 전체의 65%인 18개로 늘어났다.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면서 고향 농가들은 소득이 평균 4200만원으로 높아졌다. 국내 평균보다 500만원이 높다. 마을의 토지는 친환경 농사로 건강해졌다. 김 대표는 “내년에는 매출이 1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농가소득도 일반농가보다 1200만원 많은 5000만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처럼 귀촌하는 청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마을기업이 소멸위기 농촌을 살려낸 현장이다.
김 대표는 올해 초 동결건조기와 포장기계를 갖춘 가공공장도 새로 지었다. 유기농법으로 과수농사를 짓다 보니 상품성이 높은 사과 생산량은 감소하고 못난이 사과 생산량이 증가했다. 김 대표는 이를 활용한 사과칩과 주스를 생산하고 풋사과와 보리새싹 분말도 개발했다.
사회적 경제의 한 형태인 마을기업인 이 회사가 일반 기업과 다른 점은 수익만 추구하지 않고 항상 마을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지렁이 사육을 대량으로 늘리고 슬러지도 아무거나 가져다 쓰면 수익이 높겠지만 그러면 사업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기에 다소 느리더라도 마을과 함께 커간다는 생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성=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