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of the week] 푸틴은 유도선수처럼 서방을 다루고 있다

입력 2019-08-22 16:37   수정 2019-08-22 16:38

러시아는 약하지만, 그 지도자(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는 서구의 혼란과 우유부단함을 최대한 활용한다.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지 20년이 지났다. 1999년 8월 9일, 병든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전직 KGB 요원을 러시아의 네 번째 총리로 임명함으로써 그의 후임자로 지명했다. 옐친 대통령은 푸틴이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하면 러시아 개혁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푸틴은 20년 동안 러시아 대통령이나 총리로서 네 명의 미국 대통령과 수많은 세계 지도자의 부침을 봤다. 취임 후 첫해부터 개혁을 추구하는 대신 점점 권위주의적인 지도자가 됐다. 그러나 그는 광범위한 부패, 이탈리아보다 작은 국내총생산(GDP), 인구 감소, 낙후된 인프라 등에도 세계 무대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다시 주장할 수 있었다. 다양한 문제가 있었지만 러시아는 세계 이사회 테이블에서 자리를 되찾았고, 국내외적으로 서구의 이익을 방해하는 국가로 다시 등장했다. 푸틴은 어떻게 했을까.

미국인들은 러시아인을 숙련된 체스 선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푸틴의 스포츠는 체스가 아니라 유도다. 푸틴은 자신이 어린 시절 거리의 ‘훌리건’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무술)은 무리 속에서 나를 주장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유도를 통해 구체적인 인생관을 배웠다고 말했다. 1976년 러시아 레닌그라드의 한 석간신문은 권위 있는 대회에서 우승해 챔피언 자리에 오른 23세의 ‘유도선수 블라디미르 푸틴’을 소개했다. 당시 그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기사는 그것이 곧 바뀔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유도에서 겉으로 보기에 더 약한 선수는 더 크고 강한 적을 물리치기 위해 내면의 힘과 의지력에 의존한다. 한 가지 기본적인 기술은 상대 선수의 균형을 잃게 하고, 순간적 방향 감각을 이용해 승리의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푸틴은 서구의 혼란과 지도자들의 우유부단함이 주는 기회를 포착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그는 옐친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을 때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회복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다. 미국은 냉전 이후 시대에 비교할 만한 전략이 없었고, 러시아는 강력한 경쟁국에 맞서 이득을 취했다.

러시아는 30년 만에 중동 문제를 조율하는 핵심 국가의 자리에 복귀했다. 또 여러 분쟁에 관여하며 푸틴 대통령의 기량이 발휘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2013년 시리아였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화학무기를 이용해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군은 사린가스를 이용해 반군의 거점을 공격했다. 러시아는 반군이 공격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자국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아사드 정권을 응징하기 위한 공습 계획을 포기했다는 의구심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의 책략이었다. 레드라인은 지워졌고, 이후 푸틴 대통령은 평화 중재자로 나서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의 화학무기 저장고 몰수를 공동으로 감독할 것을 제안했다.

푸틴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친교를 맺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 긴장을 고조시켰다. 지난달 푸틴은 NATO의 엄격한 금지 조치에도 터키가 최초로 러시아제 S-400 방공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큰 승리를 거뒀다. 이로 인해 미국은 F-35 전투기 공급을 중단했다. 이 에피소드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터키가 동맹에 남아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러시아는 오바마 행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괴리를 틈타 처음으로 사우디 정부와 굳건한 관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들의 협력은 2017년 살만 국왕의 모스크바 국빈 방문에 힘입어 석유 개발에 그치지 않고 투자와 외교적 조율에까지 이르렀다.

최근 푸틴 대통령은 급성장하는 중·러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군사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에 러시아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기회를 포착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중국군이 연합 기동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일본해 문제로 화가 난 한국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의 군용기가 함께 비행했다. 경제의 비대칭성을 고려할 때 러시아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하위 파트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중국 또한 미국과 점점 더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가진 권위주의자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시 주석은 푸틴을 비판하거나 러시아 정책에 관여하지도 않는다.

푸틴은 유럽연합(EU)의 압력에도 재갈을 물렸다. EU가 헝가리의 비자유주의가 심해지고 있다고 비판하면 할수록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자신을 칭찬하고 경제·정치적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러시아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선다. 이탈리아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적이고 유로화에 부정적인 정부도 마찬가지로 노골적인 푸틴 지지자다. EU의 대(對)러시아 제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권력 게임을 할 줄 안다. 그는 심지어 지난달 바티칸에서 있었던 한 모임에서 교황이 그를 기다리게 했다.

크렘린에서 20년을 보낸 블라디미르 푸틴은 서구의 분열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다. 러시아의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재빨리 행동하는 등 자신이 유도 챔피언임을 입증했다. 그는 움직임을 알고 있다.

원제=Putin Plays Judo, Not Chess

정리=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THE WALL STREET JOURNAL 한경 독점제휴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