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 insight] 웹툰, 콘텐츠 서사의 중심에 서다

입력 2019-08-23 11:31   수정 2019-08-23 13:06



OCN ‘타인은 지옥이다’, 넷플릭스의 ‘좋아하면 울리는’,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이달 또는 다음달부터 방영되는 드라마들이다.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웹툰 자체가 많은 인기를 얻어서인지, 방영 이전부터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다. 웹툰 드라마는 이뿐만 아니다. 올 하반기와 내년에도 잇달아 제작된다. 2014년 ‘미생’으로 본격 시작된 웹툰 드라마는 지난해 ‘김비서가 왜 그럴까’로 뜨거운 열풍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젠 전체 드라마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TV에서 시선을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웹툰은 영화, 공연으로도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스크린엔 ‘시동’ ‘해치지않아’ 등이, 무대엔 올초 뮤지컬 ‘나빌레라’에 이어 연극 ‘한번 더 해요’가 오른다.

웹툰이 콘텐츠 서사의 중심에 섰다. 국내에서 오랜 시간 만화는 대중문화의 끝자락으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웹툰이란 새로운 틀 안에서 재탄생했다. 나아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고착화되어 있던 드라마, 영화 등의 서사 문법을 바꾸고 있다.

만화는 국내 시장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 혹은 일부 성인들의 수준 낮은 흥미거리 정도로 여겨졌다. 1980~1990년대 ‘공포의 외인구단’ 등 다수의 작품이 큰 인기를 얻었지만 만화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몰래 보는 것이 만화였다. 나이 들어서까지 만화를 좋아하면 ‘오타쿠’ 취급 받기 일쑤였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가장 직격탄을 맞은 것도 만화 산업이었다.

그랬던 만화가 웹툰으로 거듭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내 웹툰 시장은 2015년 4200억원에서 지난해 8800억원으로 3년 동안 두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는 웹툰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양한 웹툰 지식재산권(IP)를 확보하기 위해 웹툰 제작업체들에 대규모 투자도 하고 있다.


대중들이 웹툰에 빠진 이유는 뭘까. 한국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고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사람들은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찾고 있다. 공감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는 것 말이다. 웹툰이란 틀 속에서 만화는 더 가벼워졌고, 더 손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일과 공부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스마트폰으로 쓱 내려보며 위로 받을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서사의 중심축이 된 배경엔 웹툰만의 극도의 긴장감과 몰입도의 힘이 크다. 가로 방향으로 이어지던 만화책과 달리 웹툰은 세로로 컷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쉽게 위아래로 스크롤을 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이는 단순한 방향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는 시선을 붙잡기 위해 이야기는 더 극적으로 변했다.

매일 같이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대중들은 오히려 많은 갈증을 느끼고 있다. 비슷한 소재와 서사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웹툰만의 독특한 소재와 자유분방한 서사를 가져온 작품들은 이 갈증을 꽤 해소시켜 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대중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곧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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