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가 7년 만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다. 이 회사 부산공장 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400명 규모의 희망퇴직 및 순환휴직을 실시 하기로 했다. 2년 넘게 ‘생산·판매 절벽’에 내몰린 국내 자동차업계의 ‘감원 공포’가 현실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2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은 지난 21일 노동조합 간부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인력 조정 방안을 통보했다. 오는 10월부터 부산공장의 시간당 생산량(UPH)을 기존 60대에서 45대로 변경한다는 방침을 전했다. 생산량을 25%가량 줄인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부산공장 생산직(1800명)의 20% 이상인 400여 명이 ‘잉여 인력’이 된다. 회사 측은 남는 인력 400여 명의 희망퇴직 및 순환휴직 시행 계획을 노조에 제안했다. 2012년 감원 후 7년 만의 구조조정이다.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회사의 인력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고강도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쌍용자동차와 한국GM도 구조조정에 직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 2분기까지 10분기 연속 적자를 본 쌍용차는 이달 임원 20%를 감축했다. 직원 대상 무급휴직을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도 경남 창원공장의 근무제를 기존 2교대에서 1교대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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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절벽' 르노삼성, 7년 만에 구조조정…적자 누적 쌍용차, 新車 연기
중견 완성차 3社 비상벨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의 숙원 중 하나는 ‘시간당 생산량(UPH)’ 축소였다. 르노삼성 노조는 부산공장의 노동 강도가 다른 완성차공장에 비해 높다는 이유로 해마다 회사 측에 UPH 감축을 요구했다. 회사는 그때마다 “부산공장의 가장 큰 강점(높은 생산성)을 포기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올해는 ‘공수(攻守)’가 완전히 바뀌었다. 회사 측이 먼저 UPH를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차가 안 팔려 덜 생산해도 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UPH를 기존 60대에서 45대로 낮추는 동시에 유휴인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및 순환휴직을 시행하기로 결론냈다. 한국GM과 쌍용자동차 등 다른 중견 완성차업체의 사정도 비슷하다. 모두 극심한 판매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해 조만간 구조조정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생산절벽 직면한 르노삼성
르노삼성은 올 1~7월 9만8800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작년 같은 기간(13만9310대)보다 29.1% 줄었다. 가장 큰 원인은 일본 닛산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로그’의 주문 급감이다. 르노삼성은 부산공장에서 로그를 수탁생산하고 있다. 이 차는 부산공장 생산량(지난해 21만5680대)의 절반가량(10만7251대)을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닛산은 위탁 물량을 연 10만 대에서 6만 대로 4만 대 줄였다. 르노삼성 노조가 파업을 거듭하자 위탁 물량 일부를 다른 공장으로 돌렸다.
9월 로그 수탁계약이 끝나면 위기는 더욱 본격화한다. 르노삼성의 당초 계획은 로그 수탁생산을 최대한 연장하고, 다른 수출 모델을 빨리 배정받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상반기 노조 파업으로 어그러졌다. 닛산은 로그의 생산 위탁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로 결론냈다. 프랑스 르노 본사도 “노사 관계가 안정돼야 후속 수출 모델을 배정할 수 있다”며 아직까지 로그 후속 물량을 확정하지 않았다.
오는 10월부터는 부산공장이 ‘생산절벽’에 직면한다는 의미다. 월 생산량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르노삼성이 인력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든 것도 이 때문이다. 르노삼성은 우선 희망퇴직 및 순환휴직을 검토하고 있다. 생산직(약 1800명)의 22% 수준인 400여 명을 구조조정한다는 계획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희망퇴직 및 순환휴직의 규모와 시기는 노조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물량 부족 사태가 계속되면 부산공장 운영 방식이 현행 2교대에서 1교대로 바뀔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생산직 직원의 절반가량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르노삼성이 수출 물량을 따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의 올 상반기(1~6월) 판매량은 521만3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5.9% 줄었다. 글로벌 판매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각 공장이 치열하게 물량 유치전을 벌이고 있어 노사 갈등이 심각한 부산공장에 불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차 계획도 연기한 쌍용차
쌍용차는 최근 신차 개발 및 양산 계획을 연기했다. 10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내는 등 경영난이 심해지자 연구개발(R&D) 투자 계획을 조정한 것이다.
쌍용차는 최근 예병태 사장이 직접 관리하는 ‘비상경영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쌍용차는 당초 코란도 투리스모 후속 차량인 미니밴 A200과 중형 SUV D300을 개발해 내년 초 양산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내년 하반기 이후로 미뤘다. 준중형 SUV 코란도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 출시 계획도 재검토하고 있다.
TF는 또 인력 구조조정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을 시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 회사는 이미 이달 초 임원 20%를 내보내고 연봉도 10% 삭감했다. 회사 관계자는 “미래 생존을 위한 선제적 구조조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쌍용차는 올 1~7월 국내외 시장에 8만1063대의 차량을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8만26대)보다 1.3% 늘었지만, 신차 2종(티볼리 부분변경 모델, 코란도 완전변경 모델)을 내놓은 것을 감안하면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이라는 지적이다. 쌍용차는 지난달 29일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올해 판매목표(16만 대)를 달성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한국GM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남 창원공장을 2교대에서 1교대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창원공장에서 생산하는 스파크와 다마스, 라보 판매량이 줄어들면서 공장 가동률이 2년 가까이 60%를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위축돼 국내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모두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창민/도병욱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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