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홀 ‘노 보기’…AI 같은 무결점 경기력
고진영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이번 시즌 가장 먼저 4승 고지를 밟았다. 이날 막을 내린 LPGA투어 캐나다퍼시픽여자오픈(총상금 225만달러)에서다. 최종합계 26언더파 262타. 대회 최저타 신기록이다. 한 시즌 4승 이상의 우승을 기록한 건 2016년 태국의 에리야 쭈타누깐(5승), 호주 동포 리디아 고(4승) 이후 3년 만이다. 한국 선수만 놓고 보면 2001년, 2002년 2년 연속 5승을 올린 박세리(42), 2013년, 2015년 각각 6승, 5승을 올린 박인비(31) 이후 세 번째다.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답게 대회 기간인 나흘 내내 보기를 단 한 개도 내주지 않는 신들린 경기력을 선보였다. ‘72홀 노보기’ 우승이 나온 것은 2015년 HSBC위민스월드챔피언십의 박인비 이후 4년여 만이다. 이달 4일 끝난 AIG 위민스브리티시오픈 3라운드 2번홀에서 마지막 보기를 내준 이후로 보면 106홀 연속 노보기 행진이다.
고진영은 연습 라운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캐디가 대회장에 늦게 도착해서다. 프로암에서 9개 홀을 돌아본 게 전부였다. 물오를 대로 물오른 샷감은 경험과 정보 부족이란 장벽을 넘어섰다. 샷감과 퍼트감이 모두 좋았다.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 260야드에 80%의 티샷 정확도를 기록했다. 그린 적중률(아이언 정확도)은 90%에 육박했다. 퍼트는 28개로 막았다. 3~4m 중거리는 물론 7~10m 장거리 버디 퍼트를 모두 홀컵에 떨궜다.
위기 관리 능력도 탁월했다. 벙커에 공이 네 번 빠졌지만 세 차례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특히 두 번째 샷을 숲으로 보낸 9번홀에서 벌타를 받고도 파를 지킨 게 압권. 특유의 차분함이 빛났다. 그는 “대단한 파였다. 덕분에 72홀 노보기 플레이를 완성할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되찾아준 홀”이라고 돌아봤다.
한국인 최초 전관왕도 ‘꿈은 아니야’
고진영은 이번 우승으로 시즌 4승, 통산 6승을 달성했다. 지난해 2월 LPGA투어에 정식 데뷔한 지 18개월여 만에 올린 성적이라 놀랍다. 성적의 순도도 높다. 올 시즌 4승 중 2승은 ANA인스퍼레이션, 에비앙챔피언십 등 메이저 대회에서 수확했다. 올해 17개 LPGA투어 대회에 출전해 10개 대회에서 ‘톱10’에 들었다. 가장 낮은 성적이 2월 혼다LPGA타일랜드 공동 29위다. 7월 이후에는 ‘톱3’를 벗어난 적이 없다. 메이저 대회 성적 1위에게 돌아가는 ‘아니카 어워드’가 이미 그의 몫이 됐다. 고진영은 “지난해 시즌 최종전인 CME투어챔피언십 직후부터 2주간 쇼트 게임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던 게 올해 좋은 성적을 낸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캐나다인 게럿 라플레프스키 코치로부터 어드레스 자세와 볼 위치 등을 세밀하게 교정받은 뒤 자신감이 더 붙었다는 얘기다. “클럽부터 마인드까지 모든 것을 바꾼 게 큰 도움이 됐다.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고진영은 ‘1인자’의 위상을 한 번 더 견고하게 다졌다. 상금(261만8631달러) 1위, 세계 랭킹 5주 연속 1위다. CME글로브랭킹도 정상(3437포인트)을 굳건히 했다. 다승 부문에서도 2승의 박성현(26)과 김세영(26), 브룩 헨더슨(캐나다)에게 멀찍이 앞서 있다. 올해의 선수, 평균타수에서도 선두다. 아니카 어워드까지 이미 받은 터다. 이런 고공비행이라면 LPGA투어 주요 경쟁부문으로 꼽히는 7개 부문을 모두 석권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선수는 물론 외국 선수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LPGA투어는 8개 대회를 남겨두고 있다.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24개 대회에서 절반인 12승을 수확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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