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경기 부천 원미7B구역 재개발조합이 토지 등 소유자들을 상대로 낸 잔여채무분담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조합 측 주장을 기각한 원심을 지난 14일 확정 판결했다. 재판부는 “조합 정관은 청산 후 채무나 잔여 재산이 있을 때 조합원들에게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조합 설립이 취소된 경우 잔존 채무를 부담하게 하는 규정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원미7B구역은 2010년 10월 조합을 설립했다. 그러나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토지 등 소유자 과반이 동의해 2014년 조합설립인가 취소 결정을 받았다. 그러자 시공사로 선정됐던 건설사가 입찰보증금 30억원을 반환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돈이 떨어진 조합은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조합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정비사업을 할 때 추진위원회나 조합은 사업 초기 단계에 정비업체와 건설사로부터 돈을 빌린다. 사업이 끝날 때까진 별다른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업이 중도 취소되면 이 매몰비용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느냐는 점이다.
그동안은 해석이 분분했다. 해산에 동의한 소유주들이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과 사업 추진에 동의한 이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 조합 집행부나 공공이 책임져야 한다는 해석으로 갈렸다. 대법원은 총회 결의가 없거나 명문화된 정관이 존재하지 않는 한 토지 등 소유자 개인에게 채무 부담을 전가할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 냈다.
앞으로 중단되는 정비사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매몰비용 부담이 없어진 만큼 비상대책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조합설립인가 취소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어서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는 “추진위나 조합 등 초기 단계 사업장은 오히려 동의서를 걷기 수월해지는 측면도 있다”며 “매몰비용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사라졌다는 데 이번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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