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순백의 기질을 가진 제주 여성들이 1938년부터 2008년까지 제주에 불어닥친 긴 굴곡의 역사를 거치며 어떻게 검은빛의 강단을 내뿜게 됐는지 보여준다. 이야기는 2008년을 현재로 해 주인공 영숙이 열다섯 살이던 1938년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다. 해녀 대장이던 어머니의 딸로 태어난 영숙과 친일 협력자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미자가 마을의 해녀공동체에 들어가 함께 물질을 배우며 쌓았던 우정은 이내 갈등으로 변한다.
전통과 현대화 사이에 서 있던 해녀들을 오랫동안 탐구한 저자는 강한 모계사회 속에서 딸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희생을 자처해야 했지만 끝까지 여성의 강인함을 잃지 않았던 해녀들의 우정과 용기 어린 삶에 깊이 주목한다.
절정은 단연 제주 4·3사건의 긴장을 고스란히 서술한 장면이다. 작가는 “4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8만 명의 중산간 사람들이 피난민이 됐으며 많은 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다. 50년 동안 제주 사람들은 이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2016년 제주도를 방문한 작가가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제주 해녀들을 인터뷰해 꾸린 스토리텔링이기에 묘사라기보다는 사실적 열거에 가깝다. 소설이라기보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무거운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소설 속에서 한 해녀는 젊은 두 해녀에게 “이 세상에서, 바닷속 세상에서 우리는 힘든 삶의 짐을 끌고 다닌다”며 “우리는 매일 삶과 죽음 사이를 건너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전쟁터와 같은 그 섬에서 숨 쉬기조차 힘든 무거운 현실을 뒤로한 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나선다. 자신이 진정으로 숨쉴 수 있는 바다로 발길을 옮기는 해녀들의 아이러니한 삶을 작가는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고요하고도 슬픈 제주도의 숨은 역사를 바라보는 외국 여성 작가의 시선은 제주도와 해녀를 몰랐던 많은 이에게 여성들 사이의 관계와 그 안에서 만들어진 강인함과 더불어 회복력을 확인하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다. 무엇보다 우정과 역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전 인류적 소재인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더 깊이 와닿는다.
지난 3월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해외 10여 개국에 저작권 판매가 이뤄지는 등 세계에서 크게 주목받은 작품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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