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 홍콩의 성장률은 1년 전에 비해 0.2% 떨어져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최대 성장동력인 수출은 5.6% 감소했다. 투자는 무려 11.6% 급감해 앞으로가 더 문제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올해 홍콩의 성장률이 잘해야 플러스를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면 홍콩은 곧바로 ‘헥시트(HK+Exit)’ 문제에 봉착한다. 지난 2월부터 높아지기 시작한 유입자금 대비 유출자금 비율(E/I Ratio)은 홍콩 시위가 격렬해진 최근 들어 2.64배까지 급등했다. 홍콩 금융시장에 100달러가 들어오면 264달러가 빠져나간다는 의미다. 종전에 볼 수 없던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홍콩경제 되레 위협하는 페그제
홍콩은 1983년부터 달러당 7.8(밴드 폭 7.75~7.85)홍콩달러를 유지하는 ‘페그제’를 채택했다. 페그제 상단과 하단이 뚫리면 홍콩 중앙은행 격인 HKMA가 보유 홍콩달러를 사고파는 방법으로 페그제를 유지한다. 이 페그제는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 숱한 충격에도 잘 버텼다. 홍콩이 중국 반환 이후 빠르게 쇠락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어 국제금융 중심지로 한 단계 부상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페그제 유지의 최대 관건은 풍부한 외환사정과 순조로운 자금 유입이다.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한국과 비슷한 4400억달러 안팎으로 추정된다. E/I 비율이 1배가 넘지 않으면 페그제는 유지되지만 이 비율이 최근처럼 2.6배가 넘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홍콩 은행 예금은 1조7000억달러(약 13조3000억홍콩달러)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70%에 달해 보유 외화로 페그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1990년대 초 유럽 통화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등에서 경험했듯이 페그제가 위협받으면 환투기 세력이 홍콩달러 약세를 겨냥해 집중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페그제가 무너지면 홍콩 내에서 자금 이탈과 실물경기 침체 간 악순환 고리(vicious cycle)가 형성될 수 있다. ‘천수답 부유 경제’가 무서운 이유다.
대외적으로도 홍콩이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전염효과’가 의외로 커질 수 있다. 자금 이탈로 홍콩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 ‘마진 콜(margin call·증거금 부족)’이 발생해 ‘디레버리지(deleverage·기존 투자 회수)’ 과정에서 투자 원천국의 자산시장과 경기에 연쇄 파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페그제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누가 ‘안전판(safety valve)’ 역할을 맡을 것인지도 중요 이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원 부족에 시달려 회원국의 구제금융 요청을 다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회원국 금융시장도 구제금융과 같은 사후적인 방안보다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사전적인 방안으로 안정을 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中 '脫달러화' vs 美 '페그제 유지'
중국은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 개발에서 홍콩을 제외시켰다. 부진했던 선전, 상하이를 홍콩을 대체할 국제금융 중심지로 키워 ‘팍스 시니카’ 야망을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오히려 페그제가 조기에 붕괴돼 미국과 단절되기를 바랄 수도 있다.
미국은 페그제가 붕괴되면 홍콩과 자유롭게 교역할 수 없고, 홍콩 금융시장에서 누리는 특혜도 포기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거세게 불고 있는 탈(脫)달러화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특정국의 페그제 유지를 위해 기축 통화인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홍콩 시위 사태가 오래 지속되면 페그제 붕괴를 바라는 중국과 어떻게든 페그제를 유지하려는 미국 간 마찰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다음달 1일 30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3차 보복관세(1차 340억달러, 2차 2000억달러) 부과를 앞두고 시진핑 정부가 위안화 약세로 맞서면서 넘지 말아야 할 달러당 7위안, 즉 포치(破七: 1달러=7위안)대 진입을 용인했다.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이후 보복관세 부과로 서로 맞받아치면서 진흙탕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중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승인 없이 행정명령으로 100% 보복관세를 때릴 수 있다. 2020년 대선에서 최대 약점으로 작용할 재정적자를 관세 수입으로 메울 수 있고 대중 무역적자도 줄일 수 있어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극단적 이기주의’라는 트럼프를 향한 국제적인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앞으로 중국이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가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대폭 절하하고 미국도 달러 약세로 맞대응할 경우 글로벌 환율전쟁이 일어나고 세계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의 악몽을 다시 떠올려야 할 수도 있다. 홍콩 문제의 본질이자 위험성이다.
홍콩H지수 ELS 손실 대비해야
한국은 홍콩에 대한 수출액이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국가다.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도 약 70% 이상이 홍콩을 통해 이뤄진다. 미·중 마찰이 날로 격화되는 속에 전체 수출에서 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한다. 홍콩 문제와 미·중 마찰이 장기간 지속되면 우리나라 수출과 경기 상황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홍콩을 통한 한국의 자금조달 규모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다. 홍콩H지수를 기초로 한 ELS(주가연계증권) 잔액은 42조원에 달한다. 전체 ELS 잔액의 67%에 이르는 것으로 홍콩H지수가 8000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손실 구간인 ‘녹인(knock in)’에 들어간다. 독일 국채 금리연계 상품인 DLS 손실 사태의 충격파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홍콩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선제적 대책이 필요한 때다.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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