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근처 사는 게 죄냐" 침묵시위 나선 주민들

입력 2019-08-28 11:59   수정 2019-08-29 00:37


연일 집회와 시위에 시달리는 청와대 인근 주민들이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2년 만에 다시 침묵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밤낮없이 이어지는 시위로 밤잠을 설치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교육권마저 침해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관할 기관인 경찰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근처에 사는 게 죄냐”

청와대 인근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서울 청운효자동·사직동·부암동·평창동 집회 및 시위금지 주민대책위원회는 28일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서 주민총회를 열었다. 이들은 시민단체와 정부를 상대로 집회 및 시위 자제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조용하던 이 동네가 전국에서 모여든 시위대에 둘러싸였다”며 “청와대 인근에 산다는 이유로 집회·시위의 고통을 참아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주민총회에는 청운효자동 사직동 부암동 평창동 주민 100여 명이 참석해 불편함을 앞다퉈 호소했다. 청운효자동 주민 김모씨(61)는 “시위대가 마당에서 대변을 보고 도망간 게 CCTV(폐쇄회로TV)에 찍힌 적도 있다”며 “경찰에 소음 피해를 신고해도 시위대를 달래는 게 전부”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인 박모씨(59)는 “자정에도 시위대가 노래자랑을 벌이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다”며 “동네를 떠나려 했지만 내놓은 집이 안 팔린다”고 했다. 아이 셋을 둔 학부모 권모씨(47)는 “중간·기말고사 때도 시위가 끊이지 않아 고교생 자녀들이 집에서 공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주민총회 이후 경복궁까지 마이크와 확성기를 사용하지 않고, 구호도 외치지 않는 침묵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주민 피해 사례와 요구사항 등을 정리해 청와대에 전달했다.

올해에만 청와대 근처 집회·신고 500건

청와대 인근 지역 주민들이 집회 및 시위를 자제하라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2017년 8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청와대 인근 집회는 2016년 12월 법원이 청와대 앞 100m까지 집회·시위를 허용하면서 급증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집회는 2016년 50건에서 2017년 497건, 2018년 379건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청와대 인근 지역의 집회·행진 신고는 500건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대책위는 경찰청 관계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집회 시 교통 통제 완화 △소음 규제 강화 △차로에서의 노숙농성 금지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집회·결사의 권리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대책위 관계자는 “오히려 경찰이 ‘우리도 법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하소연했다”고 전했다.

이날도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바로 옆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산하 톨게이트노조가 한 달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도 청와대 인근에서 노숙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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