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문화 익히려 獨 유학…늘 기다려지는 연주자 되고파"

입력 2019-08-28 18:03   수정 2019-08-29 00:30


지난 6월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홀에서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결선이 진행됐다. 결선 진출자 여섯 명 중 한 명인 김동현(20·사진)이 무대에 올랐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솔로 도입 부분을 연주하려는 순간, 객석에서 갑자기 고성이 들려왔다. 러시아어로 크게 소리를 지른 사람은 금방 제지됐지만 객석은 술렁였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표정도 굳었다. 당황한 눈들은 자연스럽게 김동현에게 쏠렸다. 정작 무대에 선 김동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주를 했다.

“이미 연주에 깊이 집중한 상태여서 오히려 신경이 덜 쓰였어요. 긴장한 상태라 더 안 들렸을 수도 있고요.”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누군가 잘못하거나 실수한 게 아니라 우발적인 사고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그는 3위를 차지했다. 무대를 내려올 때 든 생각은 ‘몇 등 할 것 같다’는 예감이 아니라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고 한다. 김동현은 “결선 진출 자체가 목표였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줬기에 후련했다”고 했다.

이번 콩쿠르 입상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면서 연주 기회가 많아졌다. 29일 울산시립교향악단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다음달 3일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 차이코스프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이어 다음달 8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을 들려준다. 김동현은 “모차르트의 곡답게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와 선율의 흐름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며 “모차르트가 의도한 맑은 소리에 주목해 듣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2012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고 예원학교를 거쳐 열일곱 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예술 영재’로 조기 입학했지만 정작 그는 ‘영재’란 얘기에 고개를 흔들었다. 일곱 살에 처음 접한 바이올린에 크게 재미를 못 느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피아노 학원에 다니듯 레슨을 받았고 혼자 연습하는 시간도 없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나간 콩쿠르가 그의 삶을 바꿔놨다. 결과는 예선 탈락. 그제야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연습을 하기 시작하니 흥미가 생겼고 이화경향콩쿠르를 시작으로 레오폴드 아우어 국제콩쿠르 주니어,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휩쓸었다.

올해 스무 살인 바이올리니스트는 세계적 콩쿠르 입상이라는 벽을 넘어 또 다른 삶의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한예종 졸업반인 그는 독일 유학을 계획 중이다. 김동현은 “단순히 공부를 하러 간다기보다 많은 아티스트가 거주하고 있는 베를린에서 그들과 소통하면서 그 문화를 익히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는 덴마크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이 즈나이더다. “즈나이더의 음색을 너무 좋아해 어릴 때부터 음반을 많이 듣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가 꿈꾸는 자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다음이 궁금해서 관객들이 다시 찾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은 이 곡을 이렇게 연주했는데, 다음엔 어떻게 할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연주자요.”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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