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산업·사회 난제, 거대융합으로 풀어야

입력 2019-08-28 17:31   수정 2019-08-29 00:05

지난 4월 인류의 오랜 숙원이었던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 강한 중력으로 빛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관측 불가능한 대상이었으나 국제공동연구팀이 블랙홀 주변을 지나는 빛을 관측해 그 윤곽을 촬영했다. 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대한 발견이자 우주의 비밀을 푸는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진 블랙홀을 관측하는 것은 과학 난제 중 난제였다. 해답은 천문학자가 아니라 컴퓨터과학과 인공지능 전공자, 스타 과학자가 아니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대학원생 케이티 보우먼이 제시했다. 그는 망원경 해상도를 높이려 하지 않았다. 6개 대륙의 전파망원경 8개가 촬영한 수많은 흐릿한 영상을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하나의 고화질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가상망원경을 고안했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이론으로 제안한 블랙홀의 실체를 증명하는 오래된 난제를 천체물리학과 영상과학, 데이터과학, 인공지능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통해 해결했다.

2009년 노벨물리학상은 전하결합소자(CCD)를 발명한 물리학자 윌러드 보일, 조지 스미스, 전기공학자인 찰스 가오가 공동 수상했다. 물리학자가 아닌 가오는 광섬유를 개발해 광통신이라는 새로운 정보통신의 길을 연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는 뇌과학, 심리학, 인지과학 등을 접목해 기존 경제학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개인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설명하는 행동경제학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했다. 모두 서로 다른 분야의 학문과 기술을 융합해 올린 성과다.

정부는 성공하면 산업·경제·사회적 파급력이 큰 초고난도 기술을 확보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도전적 연구 과정에서 파괴적 기술과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산업의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술·제품을 개발해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와해성 기술, 산업의 획기적 도약을 견인하는 돌파형 기술이 필요하다. 세계 최초·최고의 초고난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기술을 융합해 전혀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는 시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나아가 파급효과가 큰 산업기술이 우리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술 간 융합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문학적 통찰력, 사회과학적 이해, 법제도와의 조화 등 비(非)기술 분야와의 융합적 접근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재난 안전, 미세먼지 저감, 생활환경 개선과 같은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간 단순 융합을 넘어 과학기술이 인문학, 사회과학, 법제도, 문화예술 등과 융합하는 ‘거대융합’이 필요하다.

한국은 10여 년 전부터 정부 부처와 대학, 산업체가 힘을 모아 융합 교육과 연구, 산업현장 적용에 나섰다. 2018년 정부의 융합 연구개발 투자는 3조8000억원에 달했다. 융합 연구 방향도 과학기술 중심의 제한적 융합에서 과학 난제 극복, 미래 융합 신산업 창출, 국민생활 문제 해결 등 거대융합을 통한 해법 제시형 융합 연구로 바뀌고 있다. 정부 융합 정책의 민간 파트너인 미래융합협의회가 설립돼 융합 교육, 연구, 산업, 정책의 융합 네트워크와 융합 생태계 구축의 구심체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산업·사회 난제는 거대융합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가 제3차 융합 연구개발 활성화 기본계획에서 밝혔듯이 창의적 융합 인재를 양성하고 융합 플랫폼을 구축해 도전적 융합 연구를 촉진해야 한다. 또 비기술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융합 연구의 성과를 우리 사회에 안착시켜야 한다.

융합은 도전과 혁신의 도구다. 그 근간에는 기업가정신과 전문가정신이 있다. 혁신을 위한 도전정신, 사회적 책임, 윤리의식 등이다. 기업가정신과 전문가정신으로 무장하고 융합의 정신과 전략으로 과학·산업·사회 난제에 도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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