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 분야에서는 레이 클라인(1918~1996)의 ‘국력방정식’이 유명하다. 미국 중앙정보부(CIA) 부국장과 조지타운대 교수를 지낸 경험을 살려 1980년 ‘P=(C+E+M)×(S+W)’라는 방정식으로 정리했다. 국력(power)은 인구와 영토(critical mass), 경제력(economic capability), 군사력(military capability)의 유형자산에 전략(strategic purpose)과 의지(will to pursue national strategy)의 무형자산을 곱해 산출한다. 국력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로 구분하는 방정식의 백미는 ‘곱하기(×)’의 특성이다. 물질적 조건인 영토, 인구, 경제력, 군사력이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정신적 조건인 전략과 의지가 제로(0)라면 국력은 결국 제로가 된다.
취약한 하드파워를 강력한 소프트파워로 극복한 사례가 19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의 현대사다. 이집트와 시리아 등이 둘러싼 아랍세계에서 절해고도처럼 출발한 이스라엘은 영토, 인구, 경제력, 군사력 등에서 적대국들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1973년까지 치른 네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는 지도자와 공동체의 전략적 역량과 강인한 의지라는 소프트파워에서 비롯됐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1970년대 후반부터 주변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하드파워를 강화하면서 21세기에는 글로벌 첨단산업의 혁신기지로 성장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로마가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균형을 장기적으로 유지해 번영한 사례다. 실질을 숭상했던 로마인들은 허풍 떠는 정신승리를 무엇보다 경멸했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는 전쟁을 무모하다고 여겼다. 이는 ‘로마군은 병참으로 이긴다’는 평판으로 압축된다. 로마군의 전쟁 준비는 병력의 규모, 무기, 군량 같은 물질적 요소를 먼저 정비하고 사기, 투지 등 정신적 요소를 최대화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병참 지원이 미흡해 빈약한 무기에 식량 부족으로 굶주리며 전장에 나서면 승리는 고사하고 떼죽음을 면하기도 어렵다. 부대 단위의 소규모 전투가 아니라 국가 단위의 대규모 전쟁에서 병참 지원 없이 정신력만으로 승리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물론 로마군에도 패배는 있었다. 그러나 가능한 물질적 준비를 마친 후에 정신력을 높이고 신들에게 행운을 기원했기에 무적의 명성을 얻었다.
클라인의 국력방정식에 리더십의 요체가 내포돼 있다. 소프트파워 관점에서 리더십은 미래의 번영을 위한 전략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에서 출발해 구성원의 실행 의지를 결집하는 역량으로 현실화된다. 리더의 허황된 전략을 추종하는 구성원의 의지가 분출되면 파멸적 비극으로 이어진다.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전략은 혼돈적 희극으로 귀결된다. 20세기 중반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연설에 기반한 선동 능력으로 국민들의 의지를 분출시켰으나 잘못된 전략 방향으로 공동체를 파멸시켰다.
1948년 이스라엘과 같은 시기에 생겨난 신생 대한민국도 세계 최빈국의 허약한 하드파워를 리더와 공동체의 전략과 의지에 기반한 소프트파워로 극복해 오늘날의 번영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변두리 영세기업에서 출발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세계 무역질서의 변화, 동북아 정세 급변에 디지털 신질서 전개라는 삼각파도의 위기에 직면한 현시점에서 오히려 국가적 차원의 소프트파워가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다. 과거의 성공 요인이었던 소프트파워가 현재는 위기의 진원지로 돌변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구성원이 국력과 조직 역량의 핵심인 전략과 의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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