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이 커지면 의사결정 비용 증가
뷰캐넌과 털럭은 1960년대부터 공공선택론을 발전시키며 작은 정부와 재정적자 축소, 규제완화 등을 주장했다. 뷰캐넌은 공공선택론과 ‘헌법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공로로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털럭은 그의 책 <지대 추구>를 통해 정부의 민간 경제 개입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 합의의 분석>은 집단 의사결정 규칙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들은 헌법을 사회 구성원 간 합리적 선택의 산물로 인식했다. ‘동의’에 이르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방법론적 개인주의’ 입장에서 경제학적으로 분석했다. 정부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헌법 체계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했다.
저자들은 공공선택을 ‘헌법적 선택’과 ‘헌법 이후 일상적 정치’로 구별해 새로운 관점에서 진단했다. 헌법적 선택은 게임의 규칙을 설정하는 것이며, 일상적 정치는 그 규칙 안에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정치적 헌법도 마찬가지 원칙이 적용된다는 게 저자들의 견해다. 과반, 3분의 2, 만장일치 등 여러 규칙 가운데 과반을 선택하는 것과 과반 규칙 아래에서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략을 택하는 것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뷰캐넌과 털럭은 헌법적 선택 단계에서는 참여자들의 직접적인 자기 이익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만장일치 합의가 가능하다고 봤다. “자신들이 불리한 결정을 수용해야 할지라도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이로운 ‘거래’나 ‘교환’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교환에서 당사자들의 이익이 충돌하지만 만장일치에 도달하고 계약이 이뤄지는 방식이 정치적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전략 선택 단계에서는 자기 이익이 모습을 드러내 첨예하게 대립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집합적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 채택한 것은 ‘비용 접근법’이다.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회적 비용이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 결과로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외부비용’과 다수의 동의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사결정 비용’이다. 외부비용은 과반, 3분의 2, 만장일치에 가까이 갈수록 적어지는 반면 의사결정 비용은 동의에 필요한 집단이 커질수록 늘어난다.
합리적 개인은 제도적·헌법적 변경의 문제를 고찰할 때 두 비용을 합친 상호의존 비용을 최소화하는 규칙을 선택한다고 저자들은 분석했다. 어떤 의사결정 규칙이 사용되느냐에 따라 상호의존 비용이 달라지는 만큼 안건에 따라 적정 의사결정 규칙이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클수록 시장에 더 많이 의존해야
저자들은 “단순 과반수 규칙을 신성시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역설했다. “소수파가 다수파보다 특정 쟁점에 더욱 강한 선호를 갖고 있다면 만장일치 미만의 어떤 규칙도 손해를 낳는 정책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과반수 규칙이란 광범위한 합의를 얻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규칙일 뿐이라는 얘기다. 가령 특정 소유주가 원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토지 용도를 변경한다면, 인근 토지 소유주의 거의 만장일치 합의를 얻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재산권이 걸린 집단 의사결정의 경우 개인들이 의사결정 비용을 기꺼이 감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많은 정치적 문제의 경우 만장일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중 다수결 규칙이 단순 과반수 규칙보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의사결정 비용이 정치적 집단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설명했다. 어떤 규칙 아래서든 결정을 조직하는 예상 비용은 큰 단위보다 작은 단위에서 더 적다는 것이다. 또 집합적 활동의 조직이 효과적으로 분권화될 수 있다면 이는 정치 과정에 시장적 대안을 도입하는 한 가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저자들은 정부 역시 유권자나 정치인처럼 사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진단하고, 정부가 커지는 것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부의 비대화를 방지하고 권한을 나눠 갖는 연방제나 양원제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설명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서로 경쟁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집단이 커질수록 의사결정 비용이 증가한다. 집합적으로 수행되는 활동들의 집합은 그 크기가 더욱 작아져야 한다. 큰 국가일수록 시장에 더 많이 의존해야 한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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