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재용 뇌물·경영승계작업 인정"…삼성, 최악 시나리오 현실화

입력 2019-08-29 15:55   수정 2019-08-29 15:59


이재용 부회장이 29일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를 받아 삼성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됐다.

이 부회장과 삼성은 향후 무죄 입증을 위해 다시 한번 장기간 법정 싸움에 돌입해야 한다. 활발히 돌아가던 삼성의 글로벌 전략에 불확실성이 가중돼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중 무역갈등, 일본 수출규제 조치, 반도체 업황 부진 등 대외적 경영 악재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이슈까지 발생해 삼성 경영환경은 말 그대로 '시계제로'에 빠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삼성이 '비선실세' 최순실(최서원)씨 측에 제공한 뇌물액 규모와 관련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선고를 내렸다.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에서 무죄로 봤던 부분을 추가 뇌물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말 3필은 소유권 자체를 넘겨준 것으로 보고 말 구입액 34억원을 뇌물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의 2심에선 말 구입액이 아닌 말 사용료 부분만 뇌물로 인정했었다.

또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에서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뇌물 혐의액 16억원도 뇌물액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삼성에 '경영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으므로 대가 관계가 인정된다는 이유다.

삼성으로선 경영불확실성이 커지게 됐다. 이 부회장이 당장의 거취 변화는 없기 때문에 일상적 경영행보는 이어가겠지만, 상당한 시간을 재판 준비로 보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경영 차질이 불가피하다.

삼성은 현재 최악의 대외적인 경영환경 변화를 맞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관세 전쟁'이 치열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삼성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일본은 전날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시행, 3차 수출규제 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75%(지난해 기준)를 차지하는 반도체 부문은 올해 6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가 예상된다. 디스플레이도 중국의 저가 공세에 출구전략을 세워야 해 상황이 녹록치 않다. 애플은 최근 삼성에 독점 공급받던 모바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물량을 중국 BOE로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 탓에 이 부회장은 거의 매주 주말 계열사 경영진들과 비상경영회의를 열었다. 이달 5일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등 주요 계열사 사장단과 회의를 연 이 부회장은 6일 온양·천안, 9일 평택, 20일 광주 사업장 등을 잇따라 방문하며 반도체부터 생활가전, 사회공헌 활동까지 폭넓은 분야를 직접 챙겼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분야는 삼성의 글로벌 투자전략이다. '리더십 공백' 우려가 나오면 당장 추진하던 인수·합병(M&A)이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등 의사결정 부재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미국 자동차 전장 기업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M&A가 없다.

만약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받을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2017년 이 부회장 구속 수감 당시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 사안을 결정하는 경영위원회가 거의 열리지 못했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이 부회장으로선 다음달 26일 만료되는 삼성전자 등기이사 임기 연장도 부담스러워졌다. 삼성전자는 두 달 안에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등기이사 임기 연장 안건을 내야한다. 국민연금은 현재 삼성전자 지분 9.97%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본격화한 상황에서 파기환송 판결은 이 부회장에 부담을 더했다.

삼성 관계자는 "흔들림 없이 위기 대응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당분간 경영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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