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공포에 美 부자들 지갑 닫는다…주택 매물 늘고 백화점 파산

입력 2019-08-29 15:48   수정 2019-08-30 01:17

미국 소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부자(소득 상위 10%)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국채에 수요가 몰리면서 미 국채 30년물 금리는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미 소매업계는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추가 관세를 취소하거나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

CNBC방송은 28일(현지시간) “중산층을 비롯한 미국 전반의 소비는 여전히 탄탄하지만 상류층은 빠르게 소비를 줄이고 있다”며 “부자들이 호화 부동산, 자동차, 사치품 등의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중개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미국 내 150만달러(약 18억2000만원) 이상의 주택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CNBC는 “뉴욕주 등지의 호화 부동산 매물이 3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쌓였다”며 “팔리지 않는 호화 주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고급 백화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 번화가에 있는 바니스뉴욕은 이달 초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백화점 체인 노드스트롬은 지난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매출이 감소했다. 마크 잰드 무디스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며 “고소득자들이 앞으로 소비를 더 줄인다면 경기 확대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미 국채 금리는 연일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 국채 30년물 금리는 이날 연 1.907%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채에 ‘사자’가 몰리면 금리는 하락하고 가격은 상승한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2년물 금리보다 낮은 장·단기 금리 역전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경기 침체를 경고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로 여겨진다.

미 소매업계는 중국산 수입품 관세에 불만을 터트렸다. 이날 미국 신발업체 200여 곳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취소해 달라는 서한을 전달했다. 이들은 대(對)중국 추가 관세로 미국 소비자들이 연간 40억달러(약 4조8000억원) 규모의 비용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트 프리스트 미국 신발유통소매협회(FDRA) 회장은 “관세가 미국 소비자가 내는 ‘간접세’가 되고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CNBC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발의 70%는 중국산”이라며 “신발업계는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 가운데 하나”라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다음달 1일부터 3000억달러(약 365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일부에 대해 15%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2500억달러(약 30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 세율은 오는 10월 1일부터 25%에서 30%로 인상할 계획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예고한 관세를 부과하면 6∼9개월 뒤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부동산 중개업체 리얼터닷컴이 이달 주택구매자 75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36% 정도가 내년에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3월 조사에서는 내년 경기 침체를 예상한다는 응답이 30%를 밑돌았다.

한편 미 국무부는 29일 미국의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잠정치를 2.0%(전 분기 대비 성장률 연율 환산)로 발표했다. 지난달 발표한 2분기 잠정치 2.1%에 비해 0.1%포인트 낮은 수치다. 이 같은 경제성장률은 1분기 3.1%에 비해 둔화한 것이다. 다만 2분기 시장 예상치(1.8~1.9%)는 여전히 웃돌았다.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도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일정 부분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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