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산다고 유년기나 청년기가 길어질까. 생의 단계들이 조금씩 늦춰질 수는 있겠지만 노년기가 길어지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생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만큼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가 됐다. 누구나 결국엔 닿는 삶임에도 젊었을 때는 무관심하고 나이가 들면 두려워한다.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인생 선배’의 조언을 책을 통해 들어보는 건 어떨까.
미국 임상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70대의 메리 파이퍼는 최근 출간한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 ‘세월의 강’을 현명하게 항해하는 법을 알려준다. 큰딸이자 엄마, 아내이자 할머니로, 그리고 치매를 앓는 여동생의 간병인으로 살아오며 생의 고비를 넘어왔기에 간결한 문장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의 선택과 마음가짐에 따라 노년의 풍경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심리학적 배경과 사례들 사이엔 줄을 긋고 싶은 격언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이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뿐, 삶에서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법칙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뿐’ ‘절망과 행복은 모두 자기 충족적 예언이다. 우리는 스스로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된다’ ‘나이듦은 새로운 모험과 축복으로 가는 여정이며, 인생의 완성을 이루는 과정이다’ 등이다.
나이듦은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얼마 전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를 출간했다. 그는 삶을 야간열차 여행에 비유했다. “열차는 그대로 달리기 때문에 내린 사람의 운명은 누구도 모른다.(…)같은 순간에 죽음을 택했다고 해도 열차에서 내리면 모두 자기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공존(共存)이란 삶이 허락된, 열차 안에서만의 일’이라는 다음 문장이 오늘, 그리고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프랑스에서는 노인을 ‘앙금 없는 포도주’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잘 숙성된 와인은 앙금마저 녹여 투명한 빛을 띠기 때문이다. 성숙한 노인도 그런 빛과 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늙어도 낡지 않기 위해, 시들지 않고 익어가기 위해, 균형 있고 풍미를 더한 와인이 되기 위해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영혼의 돌봄>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심리치료사인 토마스 무어는 올 2월 한국에 소개된 <나이 공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이듦이란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마음을 열고 몇 번이고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 많은 변화가 모여 지켜본 인생이 아니라 살아온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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