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초기엔 생산성은 감소
4차 산업혁명을 향한 각국 기업의 고민이 깊어간다. AI와 IoT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한 기업들은 당장 실적이나 성과가 나지 않아 애를 태운다. 브루킹스연구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전 세계 기업들이 자율주행에 투자한 돈은 800억달러(약 96조원)에 이른다. 2016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0.44%다. 하지만 어떤 수요도 아직 촉발되지 않았다. AI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의 투자만 엄청나지 성과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AI 투자가 오히려 미국 GDP를 까먹었다’는 분석도 있다. ‘AI 패러독스’다. AI를 도입하고 투자할수록 생산성이 늘지 않고 수익도 나지 않는다. 불확실성은 커지고 투자비만 증가한다.
그렇다고 뾰족한 묘수를 찾기도 힘들다. 이런 현상이 처음 있는 건 아니다. 19세기 전기가 나올 때도 그랬고, 20세기 말 정보기술(IT)이 도입될 때도 그랬다.
전기 모터와 전력이 본격 상업화한 건 1890년대부터다. 하지만 증기기관이 주력이었던 공장에선 전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기존 장치와 설비에 최적화된 공장 배치가 전기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미국이 대량 생산체제에 들어가면서 전기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해 소형 모터와 이동식 파워시스템이 가동됐다. 새로운 공장 환경과 생산 방식은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사회가 기술 수용해야 발전
IT 혁명도 마찬가지다. 1973년 시스템온칩 개발로 시작한 IT 혁명은 1990년 초반까지 생산성을 그다지 끌어올리지 못했다. 다른 기술의 개발이나 소프트웨어 등이 구비되지 못해 공진화(共進化) 과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IT를 일찍 도입한 기업들은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졌다.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는 IT 투자가 늘었지만 기업과 국가 수준의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IT의 ‘생산성 패러독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1995년 이후 IT산업은 급격하게 발전해 미국 생산성을 이끌었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고집적 반도체가 나왔다. 소프트웨어 혁신도 엄청났다.
채드 시버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이 두 가지 기술의 궤적이 놀랍도록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술이 도입되면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가 다시 발전하는 순서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궤적을 AI에 도입했다. 지금은 AI 패러독스를 겪는 시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AI 패러독스는 산업화의 유산이 강한 국가일수록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4차 혁명이 불고 있고 이 바람이 전 산업을 이끈다는 점이다.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당장은 측정할 수 없는 무형자본도 정확하게 꿰뚫어야 한다. 규제 개선을 통한 정부의 노력과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기술만 독단적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그제 한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패를 비난하면 바이오산업이 다 죽는다.” AI도 마찬가지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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