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日 수출규제 와중에 경영공백 우려…"한치 앞이 안 보인다"

입력 2019-08-29 17:34   수정 2019-08-3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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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29일 검찰 수사 착수 이후 34개월 만에 ‘국정농단 사건’의 판결을 내렸지만 삼성은 또다시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잇단 글로벌 악재로 경영 여건이 극도로 어려운 와중에 당분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판(파기환송심) 대비에 주력해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리더십 부재(경영 공백)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대법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최근 수년간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삼성 “국가 경제에 기여하게 해달라”

삼성전자는 이날 대법 선고 직후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놨다. 우려했던 ‘파기 환송’ 판결이 현실화한 데 대한 참담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반성과 재발 방지를 다짐하면서 위기 극복과 국가 경제 기여 등을 위해 국민의 성원을 부탁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삼성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약 3년간 이 부회장의 구속 기소, 1심 실형 판결, 2심 집행유예 판결 등을 맞으면서도 공식적인 입장을 단 한 번도 내놓은 적이 없다. 경제계 관계자는 “삼성이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삼성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게 경제계 평가다. 2016년 10월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사로 삼성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국정농단과 관련해 10여 차례 압수수색을 받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관련 수사 등으로 이어졌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일 경제전쟁과 애플 등 경쟁사들의 견제, 중국의 추격 등으로 삼성이 최악의 위기 상황에 몰리고 있다”며 “이번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로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경영 불확실성 더욱 커져”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삼성이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기 전까지 14건의 M&A를 주도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삼성의 M&A는 사실상 중단됐다. 2017년 미국의 자동차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한 게 마지막이었다. 삼성은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난달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받아 재구속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2017년 이 부회장의 구속 수감 당시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 사안을 결정하는 경영위원회가 거의 열리지 못했던 것과 같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룹 지배구조 개선과 사업 구조조정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목표 달성도 불투명해졌다.

무엇보다 삼성이 경영 공백을 감당하기에는 대내외 악재가 너무 많다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반도체 가격 급락세로 삼성전자의 실적이 급감하는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경제보복까지 겹쳐 ‘복합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입김이 더욱 커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위기일수록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지만 이마저도 힘들어졌다. 이 부회장이 2017년 구속된 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됐다. 이 부회장이 복귀한 뒤 일부 기능을 이어받은 삼성전자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마저 무차별적 검찰 수사로 사실상 업무가 마비됐다. 삼성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꾸려나가야 하지만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 앞이 안보인다”고 말했다.

정인설/황정수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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