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 연말부터 서울과 수도권 등에서 ‘역전세난’이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역전세란 전셋값 하락으로 집주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입주물량 증가가 원인이다. 그러나 2021년부턴 다시 공급이 급감할 예정이어서 전세가격 변동성이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역전세난’ 전망한 KDI
KDI는 최근 ‘우리나라 주택공급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를 통해 올해 지방을 중심으로 역전세 현상이 확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새 아파트 입주가 계속 이어져서다. 공급량이 장기평균 대비 10% 늘어날 때 전셋값은 연간 0.6~1.21% 하락한다는 게 KDI의 분석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39만6000가구로 지난해(45만8000가구)보다 13%가량 줄었다. 그러나 연간 20만~30만 가구 선이던 예년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전국 전세가격은 2017년 12월부터 1년8개월째 하락하는 중이다. 서울과 부산, 광주, 울산, 경남 등지는 지난해보다 공급이 많다. 수도권도 3년째 10만 가구 이상의 입주가 이어지는 중이다. 전국에 쌓인 1만8000가구의 준공후 미분양 아파트도 전세가격 약세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전셋값이 떨어지면 임대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받더라도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줄 수 없다. KDI는 이 같은 역전세 현상이 서울에서도 표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전셋값이 가장 높았던 시점이 2017년 12월~지난해 2월인 점을 감안하면 세입자들의 만기가 도래하는 연말부터 현실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1만 가구 이상의 입주가 줄줄이 이어지는 서울 강동이 대표적이다. 고덕동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전용면적 84㎡ 전세가격은 2017년 연말 6억~7억원대였지만 현재는 5억 중반~6억원대에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KDI는 수도권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이 지난해 대비 0.75~1.48% 하락한 2억3000만원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2017년 말 대비 2000만원 하락한 수준이다. 송인호 KDI 연구위원은 “역전세는 임차인에겐 유동성 제약, 임대인에겐 보증금 상환 압력을 가져온다”며 “전세대출 기관이나 반환보증 기관의 재무건전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정원 또한 하반기 부동산시장 전망을 통해 올해 전국 전셋값이 2.6%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수도권 외곽과 지방에선 전세 물량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성식 부동산연구원장은 “경기와 동남권 지역 등 입주물량이 증가하는 지역과 주변 지역의 전세가격 후퇴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간에선 공포 수준의 역전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영광 대우건설 연구원은 “신도시 생활권과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선 최근 늘어난 입주량에도 전셋값이 강보합세를 보였다”며 “서울의 경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로 10년차 이내 아파트의 희소가치가 증가하면서 전셋값의 하방 경직성이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1년엔 입주 반토막
KDI는 주택 인·허가 물량이 해마다 들쑥날쑥해 수급 불균형을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급증과 급감이 반복되다 보니 4~5년마다 가격 불안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2015년 주택 인·허가는 76만5328가구로 기초 주택수요를 35만8000가구 초과했다. 이후 지난해까지 연간 20만~30만 가구 안팎으로 수요를 웃돈 인·허가가 이뤄졌다는 게 KDI의 계산이다. 송 연구위원은 “최근 공급 급증은 2000년대 초중반 지정된 택지가 2014~2015년 민간에 대량 공급된 결과”라며 “분양이 늘면 3년의 시차를 두고 미분양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올해와 내년은 준공후 미분양이 2만~3만 가구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게 늘던 인·허가는 다시 감소하는 중이다. 서울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지난해 3만2848가구로 2017년(7만4984가구)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당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한 ‘밀어내기’가 급증했던 걸 감안해도 감소폭이 크다. 올해 상반기엔 2만2436가구의 아파트가 인·허가를 받았다.
인·허가는 통상 공급물량의 선행지표로 통한다. 4~5년의 시차를 두고 착공과 입주가 진행돼서다. 이 때문에 2024년께엔 공급절벽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여파로 인·허가를 받고도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 늘어나면 공급 감소폭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당장 2년 뒤부터 아파트 입주물량은 예년의 반토막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부동산114가 입주자모집공고를 기준으로 집계한 2021년 서울 아파트 공급량은 2만644가구로 올해(4만2892가구) 대비 52%가량 감소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의 분양보증 갈등이나 조합 내홍 등으로 분양을 미룬 정비사업 단지들이 많은 까닭이다. 이 때문에 2년 뒤엔 서울 전역에서 다시 전세가격이 강세를 보일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2021년엔 전국 기준 입주물량도 21만8016가구다. 정점이던 2017년(45만8628가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예정대로 분양하지 못하는 단지가 늘면서 물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며 “아파트 공기(工期)가 2년6개월~3년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 현재 착공하더라도 일러야 2022년께 입주한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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