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한국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컬럼비아에지워터CC(파72·6478야드). 1번홀(파4)부터 4번홀(파4)까지 연이어 파를 기록한 고진영(24)은 5번홀(파5)에서 이글 기회를 잡았다. 두 번 만에 그린에 올린 공이 홀컵에서 8m가량 떨어진 곳에 멈춰섰다. 침착하게 퍼터로 밀어낸 공은 그대로 홀컵에 빨려들어갔다. 고진영이 보기 없는 플레이를 시작한 브리티시여자오픈 3라운드 3번홀(파4) 이후 111번째 홀이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기록을 넘어섰다. 우즈는 2000년 110개 홀 연속 ‘노 보기’ 기록을 세웠고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 고진영은 이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캄비아포틀랜드클래식(총상금 130만달러) 대회 1라운드에서 114개 홀 연속 ‘보기 프리’ 경기를 했다. 2000년은 우즈가 20개 경기에 나가 승률 45%인 9승을 올렸던 절정기다.
‘연속 홀 노 보기’ 기록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LPGA투어 등에서 공식 기록으로 잡지 않아 역대 최고 기록이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다. 그러나 PGA투어에서는 우즈의 기록이 최고 기록으로 알려져 있고, 유럽 투어에서는 루크 도널드(잉글랜드)가 2012년 세운 102개 홀 노 보기 행진이 유명하다. 국내 투어(KLPGA)에서는 지난해 김자영(28)이 세운 99개 홀 연속 노 보기 기록이 알려진 최고 기록이다.
고진영의 보기 없는 경기는 지난주 시즌 4승을 수확한 캐나다퍼시픽여자오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72홀을 돌면서 보기 없이 버디만 26개를 잡는 맹타를 휘두르며 대회 최저타(26언더파 262타) 신기록을 세워서다. 1992년 이래 LPGA투어 72홀 경기에서 보기 없는 무결점 플레이로 우승을 거머쥔 선수는 2015년 박인비(31)가 최초며 고진영이 두 번째다.
1번홀부터 4번홀까지 파를 기록한 고진영은 5번홀부터 본격적으로 타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글을 잡은 뒤 6번홀(파4)과 7번홀(파5)에서 연이어 버디를 골라냈다. 6번홀에서는 아이언샷이 백스핀을 먹고 홀컵 1m에 붙었고, 7번홀에서는 그린 오른쪽에서 시도한 벙커샷이 홀 옆 1.5m 근처에 섰다.
8번홀(파3)에서도 타수를 잃지 않았지만 9번홀(파4)에서 뜻하지 않게 제동이 걸렸다. 1m를 약간 넘는 파 퍼트가 홀컵 왼쪽으로 지나쳐버렸다. 퍼팅 백스트로크는 좋았지만 다운스트로크에서 힘있게 밀지 못하고 감속을 했다. 감속하면 퍼터 헤드가 닫히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로써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시작된 노 보기 행진이 114번째 홀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노 보기 행진은 멈췄지만 그는 11번홀(파4)에서 10m에 달하는 장거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4언더파 68타 공동 24위로 1라운드를 마쳤다. 레이디스스코티시오픈을 제패하며 5년 만에 통산 3승을 수확한 허미정(29)이 8언더파를 쳐 한나 그린(호주)과 함께 공동 선두로 1라운드를 마쳤다. 2009년 이 대회에서 생애 첫 승을 거둔 허미정은 10년 만에 대회 2승, 통산 4승째를 노릴 수 있게 됐다. 이미림(29)과 이미향(26)이 고진영과 같은 24위로 대회를 시작했다. 고진영은 1라운드를 마친 뒤 “스트로크를 하는 순간 감속이 됐다. 긴장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노 보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이 됐는데 이제 기록에서 자유로워져 후련하다”며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핫식스’ 이정은(23)은 6언더파 공동 5위, 박성현(26)은 루키 전영인(19) 등과 함께 5언더파 공동 12위로 대회를 시작했다. 한국 선수가 이 대회를 제패하면 시즌 13승째를 거둔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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