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28일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관객들의 선택으로 ‘유열의 음악앨범’은?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5/5)
영화 ‘침묵’으로 묵직한 부성(父性)을 전한 정지우 감독. 이번에는 청춘의 빛나는 한 순간이다. 신작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카메라는 청춘남녀의 사랑 연대기에 깊숙이 몰입, 관객을 싱글벙글거리게 한다. 하지만 선남선녀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사랑에 대한 은유 및 언급이 곳곳에서 반짝인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과의 연관도 놓칠 수 없다.
1994년 10월1일. KBS 제2FM(현 쿨FM) ‘유열의 음악앨범’이 첫 방송되던 그날, 미수제과점에서는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잘생긴’ 현우에게 호감을 느끼는 미수. 하지만 그 감정이 무르익기도 전에 현우는 미수 곁을 떠나고 만다. 1997년·2000년·2005년. 반복되는 재회와 이별 속에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애정을 차곡차곡 쌓아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수는 현우가 꽁꽁 숨겨 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는데….
처음부터 사랑이다. 미수에게 “콩”을 찾는 현우의 뒤로 DJ 유열은 방송, 사랑 그리고 비행기의 공통점이 뭔지 아냐고 청취자에게 묻는다. 답은 “출발할 때 에너지가 가장 많이 든다”. 미수와 현우가 사랑을 시작함에 있어 본작이 그 힘든 시작을 다룸을 알리는 일종의 이정표다. 원고(原稿)와 다르게 밖이 안 보이는 곳에서 라디오 방송이 진행된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미수의 모습은, 밖에서 볼 때는 마냥 ‘어떤 모습’으로 보이나 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모습의 정반대가 있을 수 있다는 사랑의 성질에 대한 은유다. 언니 은자(김국희)의 불행한 결혼 생활은 또 어떤가. 사랑은 콩깍지가 씌는 일이고 어쩌면 미수와 현우의 사랑 또한 누군가에게는 잘못된 만남에 불과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은유다. 믿어달라고 하는 남자와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믿냐고 하는 여자는 딱 화성남과 금성녀다.
특히 자존감은 본작이 몇 번이고 강조하는 또 하나의 사랑이다. 20일 언론시사회에서 정해인은 사랑하는 사람의 도움이 현우가 자존감을 지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위해 때로는 타인의 사랑도 필요하다는 말이렷다. 그래서 미수의 선택이 매우 흥미롭다. 스스로를 “아주 많이 후진 상태”라고 평가하며 만남을 뒤로 미루는 미수의 모습은 타인의 사랑이 나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지언정 무조건적인 의존은 오히려 독이라는 것을 이른다. 현우가 은자 딸 금이(심달기)를 만나는 신이 좋은 예다. 엄마한테 왜 그렇게 못되게 구냐고 묻는 현우에게 금이는 당당히 그 이유를 설명한다. “왜냐면 은자한텐 저밖에 없거든요.” 소진된 자존감을 타인에 대한 맹목적 사랑으로 대체할 경우 그 끝은 조소밖에 없다는 것을 ‘유열의 음악앨범’은 똑똑히 명시한다.
한편, 머리가 짧아진 현우를 보면 징집 탓에 쥬느비에브와 이별을 맞이한 기가 떠오른다. 제1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쉘부르의 우산’에서 기와 쥬느비에브는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재회하고, 결국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자크 데미 감독은 모든 대사를 노래로 처리함으로써 신파에 준하는 서사에도 불구, 관객이 두 남녀를 멀리서 지켜보도록 한다. 그러므로 관객은 그 슬픈 사랑에 집중하기보다 생의 순리를 곱씹게 된다.
반면 정지우 감독은 출연진에게 노래를 시키지 않는다. 대신 시대를 아우르는 여러 사랑가가 귓가에 추억을 안긴다. ‘자유시대’부터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처음 사랑’ ‘영원한 사랑’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데이트’ ‘보이나요’ ‘오, 사랑’ ‘픽스 유(Fix You)’까지. 우리에게는 과거이나 등장인물에게는 현재인 그 시절 사랑가는 사연과 신청곡처럼 이야기와 짝을 이룬다. 정지우 감독은 두 배우가 다한 작품이라며 누차 겸손을 내비쳤지만, 사랑의 관조만큼 매력적인 사랑의 몰입이 탄생한 데는 그의 공(功)이 가장 크다.
김고은의 미수는 영락없는 ‘도깨비 신부’ 은탁이다. 또렷한 이목구비의 한계다. 물론 본작에서 그는 보석처럼 영롱하다. 하지만 영화 ‘차이나타운’ ‘변산’ 속 김고은만 못하다. 안 예쁜 김고은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은 그가 앞으로도 배우를 하려면 꼭 유념해야 할 문제다.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소위 ‘멜로 삼부작’을 완성시킨 정해인은 밀어를 속삭일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완전하다. 그의 말간 얼굴은 남녀를 오가는 구석이 있어 매력적이다. 하지만 현우의 트라우마를 ‘무릎 반사’ 식의 일차원적 연기, 이를 테면 허무에 찬 표정이 전부인 것은 다소 불만이다. 보다 복합적이고 음울해야 했다. 122분. 12세 관람가.
(사진제공: CGV아트하우스)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