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1순위는 극일(克日) 전략”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을 짤 때 가장 신경 쓴 항목으로 ‘극일’을 꼽았다. 단순히 일본을 배척하는 반일(反日)을 넘어 일본을 실력으로 극복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내놓은 게 2조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다. 이 돈은 연구개발(R&D)과 각종 실증·테스트 장비를 구입하고 실험하는 데 쓰인다.
정부 재정은 크게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기금으로 나뉜다. 정부가 급하게 돈이 쓸 곳이 생기면 빼서 쓸 수 있는 일반회계와 달리 특별회계는 전용이 불가능하고, 국회에서 관련 법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서까지 소재 등 예산을 특별회계로 편성한 건 그만큼 정부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에 대응해 ‘글로벌 우군’을 확보하는 데도 목돈을 투입한다. 정부는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공공외교 예산을 213억원에서 479억원으로 늘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전 세계 오피니언 리더 등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역사·정책을 알려 한국편을 많이 만드는데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과의 분쟁에 대비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법률자문 지원 예산도 전년 대비 100억원 넘게 늘렸다.
‘혁신성장 및 경제활력’ 19% 증액
가장 큰 폭으로 예산이 늘어난 분야는 혁신성장과 경제활력 부문이다. 전체 12개 분야 중 연구개발과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사회간접자본(SOC)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3개 부문 예산은 올해 59조1000억원에서 내년 70조3000억원으로 19.0% 확대된다. 전체 예산증가율(9.3%)의 2배가 넘는 수치다. 12개 분야 중 두 자릿수로 인상된 건 이들 3개 부문과 환경(19.3%) 복지(12.8%) 등 5개였다.
혁신성장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플랫폼인 ‘D·N·A’(데이터·5G 네트워크·AI)에 1조700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자동차 등 정부가 꼽은 ‘빅3’ 산업에는 나랏돈 3조원이 들어간다. 정부는 이런 산업을 키울 인재 4만8000명을 배출하기 위해 6000억원을 들이기로 했다. ‘제2벤처 붐’을 조성하기 위해선 한국벤처투자가 운영하는 모태펀드에 1조원을 출자하는 등 모두 5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경제활력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는 사회간접자본(SOC)을 택했다. 4000억원을 들여 상수도관에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탑재해 실시간 수질·수량을 관리하는 등 ‘스마트 인프라’ 구축사업에 나선다. 도서관 주민센터 등을 짓고 노후시설을 개선하는 생활 SOC 사업에도 10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사그라들고 있는 설비 투자를 늘리기 위해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을 통해 14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도 공급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기금에 각각 2000억원과 3700억원을 출자·출연해 4조2000억원 규모의 무역금융 자금도 조성한다. 모두 경제의 ‘피’인 돈을 돌게 해 경기를 띄우려는 의도다.
전문가들 “규제개혁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이런 예산 편성 방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규제개혁 노력이 없으면 공염불에 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혁신성장과 경제활력을 위해선 규제 합리화가 재정투입보다 효과적”(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란 이유에서다.
정부가 내년 예산투자 1순위로 꼽은 소재 등 예산이 대표적이다. 화학물질관리법 등 환경규제와 산업안전보건법, 주52시간제 등 노동규제의 완화 없이는 성과를 내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류재우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어렵다고 무작정 재정 지출을 늘리기보다 규제완화와 노동개혁을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NIE 포인트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사상 처음 500조원 이상으로 짠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일본 수출규제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선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생각해보자. 혁신성장을 위해선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토론해보자.
성수영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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