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림은 2일(한국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컬럼비아에지워터CC(파72·6476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캄비아포틀랜드클래식(총상금 130만달러)에서 해나 그린(23·호주·21언더파)에게 1타 모자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1타를 줄이는 데 그쳐 최종합계 20언더파 268타를 기록했다. 17번홀까지도 그린의 거센 추격을 뿌리쳤지만 18번홀(이상 파4) 하이브리드 티샷을 페어웨이 벙커에 빠뜨려 보기로 미끄러진 것이 뼈아팠다. 안전우선 전략이 되레 독으로 돌아왔다.
2001년생 소녀 골퍼, 스포트라이트 독식
노예림은 월요 예선으로 출전권을 따낸 ‘비주류’였다. 하지만 1주일 내내 주연급 관심을 받았다. 프로 전향 후 투어 카드 없이 첫해를 보내고 있는 노예림이 우승 경쟁을 하는 상황에 국내외 매체들이 주목했다. 미국 현지 골프매체들은 이례적으로 여자골프 소식을 메인 뉴스로 다뤘다. 미국에선 그를 발음하기 더 쉬운 ‘예리미 노(Yealimi Noh)’로 부른다.
175㎝의 큰 키에 매력적인 외모가 돋보인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270야드를 쉽게 보내는 파워를 갖춰 골프계에서 일찌감치 차세대 스타로 점찍었다. 노예림은 이번주 평균 272야드를 보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국내 반응도 뜨겁다. 노예림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2001년 태어났다. 투어에선 미국 국적으로 표기하지만 한국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한국말이 유창하고 스윙 스타일이 비슷해 국내 골프팬 사이에선 ‘제2의 미셸 위’로도 불린다. 영화 ‘타짜’의 대사에 나오는 ‘예림’과 이름이 같아 팬들이 댓글로 패러디를 양산하며 그의 이름이 더 널리 퍼졌다.
하나금융그룹은 그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봤다. 박폴 스포츠마케팅 팀장은 “노예림 프로는 하나금융그룹 골프단의 미래”라고 했다. 또 그는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주관 대회에서 네 차례 우승하며 훌륭한 아마추어 커리어를 쌓았고 박세리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확신이 생겼다”며 “프로 대회에서도 곧잘 해 기대가 컸는데 이렇게 빨리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비록 역대 세 번째 월요 예선 출신 우승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나 그에 비견될 만한 수확을 얻었다는 평가다. 그는 이 대회를 끝으로 2019시즌 LPGA투어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달 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 오션코스에서 열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2019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에 초청 선수로 출전한다. 노예림은 “LPGA투어에 적응했다. 올해 퀄리파잉 스쿨을 거쳐 다시 돌아오겠다”며 “내년이 더 기대된다”고 다짐했다.
‘호주 부처’ 그린, K골프 대항마로
노예림의 돌풍을 잠재운 그린은 지난 6월 메이저대회 KPMG여자PGA챔피언십에서 나흘 내내 선두를 지킨 ‘와이어투와이어’ 생애 첫 승을 거둔 데 이어 3개월도 안 돼 시즌 2승째를 신고했다. 그린은 강철 같은 정신력을 지니고 있어 호주 골프 레전드 카리 웹이 일찌감치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은 인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말수가 적은 모습은 ‘골프 여제’ 박인비(31)의 ‘무심(無心)골프’를 연상하게 한다. 웹은 “그린의 정신력은 메이저 무대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느린 백스윙을 구사하는 박인비처럼 그 역시 여자 골퍼로는 드물게 코킹을 절제한 작은 백스윙으로 대회를 평정했다. 코스에서는 냉정한 승부사지만, 코스 밖에서는 팬들의 사인 요청을 100% 들어주는 ‘착한 골퍼’로 소문나 있다.
그린은 3타 뒤진 2위로 4라운드를 출발했으나 5타를 줄이면서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승부처였던 마지막 네 홀에서 버디 2개를 낚아챘고 마지막 18번홀에서 약 2m 거리의 파 퍼트를 침착하게 넣으며 우승상금 19만5000달러를 챙겼다.
신인상 수상이 유력한 ‘핫식스’ 이정은(23)과 허미정(30), 김세영(26)이 12언더파 공동 9위에 올랐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24)과 2위 박성현(26)은 10언더파 공동 20위에 자리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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