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딜 막전막후] 대주주 직접 찾은 베어링PEA 한국팀, 애큐온금융 품다

입력 2019-09-03 17:31   수정 2021-10-20 17:43

이 기사는 09월 03일 17:3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09월03일(17:3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12월말 일본 도쿄 롯폰기의 한 특급호텔.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베어링PEA의 김한철 한국 대표는 마침 일본을 방문한 JC플라워의 고위급 파트너를 찾아갔다. 대형 여신전문회사인 애큐온캐피탈과 애큐온저축은행 인수를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계 PEF인 JC플라워는 애큐온캐피탈과 애큐온저축은행의 대주주였다. 2015년 8월 애큐온캐피탈의 전신인 KT캐피탈과 같은 해 10월 두산캐피탈을 차례로 인수한 후, 2016년 7월에는 애큐온저축은행의 전신인 HK저축은행을 인수해 합병한 회사가 애큐온이다.

JC플라워의 반응은 냉담했다. JC플라워 고위 파트너는 베어링PEA의 제안서를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김한철 대표는 “우리와 거래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5분만 이야기하자”며 베어링PEA가 제시할 수 있는 가격과 인수구조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이미 베어링PEA의 내부승인을 받아 공식 제안서까지 준비했기 때문에 JC플라워의 마음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었다. 과연 5분도 지나지 않아 JC플라워 고위 파트너는 밀쳐뒀던 제안서를 끌어모아 정독하기 시작했다. 제안서를 좀 더 정밀히 검토한 연락하겠다며 자리에 일어서던 JC플라워 고위 파트너가 말했다. “김대표, 마음에 안들면 연락은 따로 안 드릴테니 그렇게 아세요.” JC플라워 측으로부터 ‘거래를 하자’라고 연락이 온 건 불과 3시간 뒤였다. 베어링PEA가 국내 유일의 ‘캐피털+저축은행’ 체제의 여신전문금융 플랫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독점적인 기회를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의 스폰서 회사로서 중장비 리스 1위 두산캐피탈을 보유한 애큐온은 소매금융, 기업금융, 투자금융 등 전 영역에서 고른 강점을 갖고 있다. 5조원이 넘는 순자산과 33만5000여명의 고객을 바탕으로 매년 900억원의 순익을 올리는 알짜 금융사다.


애큐온 인수는 JC플라워 고위 파트너의 마음을 되돌린 김 대표의 임기응변 덕분이지만 베어링PEA가 거래를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기도 했다. 베어링PEA는 국내 금융시장 투자에 적극적인 외국계 운용사다. 국내 3위 생명보험사인 교보생명의 지분 5.23%를 보유한 주요주주이고 2016년 우리은행 민영화를 위한 예비입찰에도 참여했다. 최근 2~3년간은 국내 중금리 금융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여신금융전문회사를 집중 연구해왔다. JC플라워 고위 파트너가 냉담한 첫 반응을 보였지만 베어링PEA는 애큐온 투자 4년째를 맞은 이 운용사가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나설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분석한 후 공개경쟁입찰 이전에 먼저 접촉해 수의계약을 성사시키는 건 김한철 대표와 베어링PEA 한국팀의 주특기이기도 했다. 로젠택배(2013년)와 한라시멘트(2016년) 모두 김 대표가 먼저 대주주를 찾아가 인수하는데 성공한 거래였다. 한라시멘트는 인수 후 경영진과 함께 다양한 가치창출 활동에 집중함으로써 수익성을 대폭 개선시켰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저품위 유연탄의 활용도를 향상시키고 대체연료 비중을 높이는 등 연료비 구성을 개선했다. 신규 폐열발전 설비 투자를 진행하는 동시에 임직원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성과평가 지표 및 조직체계를 재정비했다. 그 결과 2014년 682억원이었던 상각 전 영업이익 (EBITDA)이 2016년 958억원으로 연평균 18.5% 늘었다. 지난해 한라시멘트를 아세아시멘트에 성공적으로 매각하면서 글로벌 PEF업계 전문지인 프라이빗에쿼티인터내셔널 (Private Equity International)의 '2018년 올해의 엑시트(Exit of the Year 2018))'에 뽑히기도 했다.

이 같은 투자실적에 힘입어 베어링PEA는 올 4분기 7호 펀드 조성을 앞두고 있다. IB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 투자자들은 물론 베어링PEA에 자금을 출자하겠다는 신규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 목표설정액인 55억달러(약 6조 6000억원)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지역에 투자하는 PEF로는 최대 규모 가운데 하나다. 특히 7호펀드에는 국내 연기금과 금융기관들이 참여해 베어링PEA의 투자성과가 한국 투자자들의 이익과도 연결된다.

오는 4분기에는 국내 4위 택배회사인 로젠 매각에 착수한다. 로젠을 매물로 내놓으려는건 2013년 인수 이후 기업가치가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2012년말 147억원이었던 상각 전 영업이익이 올해 3배 이상 늘어난 420억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국내 택배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서도 로젠의 기업가치가 크게 개선된 건 업계에서 가장 높은 효율성과 택배단가(ASP) 덕분이다. 로젠의 택배단가는 작년말 업계 평균단가보다 590원 이상 높았다. 올해 택배업계가 전체적으로 단가를 올린데 힘입어 7월말 기준 로젠의 택배단가는 전년대비 약 2% 올랐다. 터미널 자동화 등 운영 효율성을 개선하면서 올 상반기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이상 물량을 늘리는 등 경쟁회사보다 더 빠른 물량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경기도 부천에 새로운 수도권 터미널을 완공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증가하는 택배시장의 수요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IB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E-commerce)의 급성장이 택배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 대형 택배회사 가운데 매물로 나올 만한 곳은 로젠 밖에 없다”며 “매각작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인수후보들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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