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다음달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앞두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 말까지 3개월 연기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치기로 하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강행을 위해 조기 총선 실시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다만 존슨 총리가 정국 주도권을 사실상 뺏긴 상황이어서 조기 총선 실시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된 지 3년이 넘었지만 브렉시트를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영국 하원은 3일(현지시간) 내각이 갖고 있는 의사 일정 주도권을 4일 하루 동안 하원에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328표, 반대 301표로 통과시켰다.
집권 보수당 의원 중 21명이 당론을 어기고 찬성표를 던졌다. 보수당은 이날 투표를 앞두고 소속 의원 한 명이 탈당하면서 과반 의석을 상실했다. 영국 하원의원은 650명으로, 의장단(4명) 및 북아일랜드 신페인당 의원(7명) 등 표결권이 없는 의원을 제외한 639명의 과반은 320명이다. 이 중 보수당 의석은 309석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정당인 민주연합당(DUP·10석)을 합쳐도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제1야당인 노동당을 비롯한 야당은 영국이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 저지를 위해 마련한 법안을 4일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보수당이 과반을 상실한 데다 당내 ‘반란표’를 감안하면 이 법안도 가결이 유력하다.
법안은 EU 정상회의 다음날인 내달 19일까지 영국 정부가 EU와 브렉시트 합의에 도달하거나,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의회 승인을 얻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 시한을 올 10월 31일에서 2020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연기해 달라는 서한을 EU에 보내야 한다.
BBC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국 언론은 존슨 총리가 취임 후 첫 하원 표결에서 패배하며 브렉시트 주도권을 잃었다고 분석했다. 노딜 브렉시트 강행 의지를 밝혀온 존슨 총리는 이날 표결 직후 “하원이 EU와의 협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브렉시트 시한을 더 연기할 수 없는 만큼 다음달 조기 총선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총선을 치른 영국의 차기 총선은 2022년 열린다. 존슨 총리가 다음달에 총선을 앞당겨 실시하려면 하원 3분의 2 이상 지지를 받아야 한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날짜인 다음달 15일 조기 총선이 실시되려면 근로일 기준 25일 전인 오는 9일까지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
문제는 집권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상실하는 등 존슨 총리가 정국 주도권을 내줬다는 점이다. 야당은 브렉시트 시한 연장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조기 총선에 찬성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노딜 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해 당초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해온 노동당 내부에서도 변화 기류가 적지 않다. 급진 좌파성향인 제러미 코빈 대표에 대한 중산층의 거부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조기 총선을 치르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이 끝내 조기 총선을 거부하면 존슨 총리는 다음달 19일까지 EU와 브렉시트 합의에 도달하거나 내년 1월 말까지 브렉시트를 또다시 미뤄야만 한다. 이 때문에 존슨 총리가 제2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BBC는 존슨 총리가 조기 총선 실시를 위해 자신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의회에 요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내각 불신임 투표는 3분의 2 이상 지지가 필요한 조기 총선과 달리 과반 찬성만 받으면 된다. 불신임 투표가 가결되면 의회는 임시내각을 구성해야 하는데 2주일 내 내각을 꾸리지 못하면 결국 조기 총선으로 간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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