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기른 머리에 깨끗한 피부를 가진 소녀가 강렬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소녀의 단정한 차림, 암석으로 꾸민 벽, 고급스런 초록 소파, 목걸이 끝에 달린 십자가 그리고 우유잔 등 인물을 둘러싼 환경은 부유하고 포근하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이는 인물의 눈빛 하나가 사진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을 가득 채웠다. 관람자들은 소녀의 표정을 보고 사진에 담긴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이는 인물사진에 작가의 철학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독보적인 작업을 해온 네덜란드 사진가 어윈 올라프의 ‘팜스프링스’ 시리즈 중 하나인 ‘조카(The Niece)’라는 작품이다.
올라프는 팜스프링스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부촌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을 등장시켜 ‘지상낙원’에 내포된 균열과 불일치를 보여주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사진들은 회화적인 강렬한 색채와 정교하고 세련된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올라프는 렘브란트, 요하네스 베르메르 등 네덜란드 황금시대 화가들의 맥을 잇는 21세기 예술가로 인정받는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