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비행기표를 현금과 마일리지를 섞어서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왕복 항공권을 ‘40만원+5만 마일리지’로 결제하는 식이다.
1984년 마일리지 제도 도입 후 36년 만에 사용처가 대폭 확대되는 것으로, 양대 항공사 마일리지를 보유한 약 2500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성수기에도 복합결제(현금 마일리지 혼용 결제)가 허용되는 만큼 ‘보너스 좌석’ 공급 부족을 둘러싼 소비자 불만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두 항공사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제안에 따라 복합결제 도입을 위한 세부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의 마일리지 발행 규모에 비해 소비자 사용 규모가 훨씬 적은 만큼 복합결제를 허용해 소비자가 필요할 때 마일리지를 쓸 수 있도록 하라고 요청했다. 항공사 관계자는 “마일리지 소멸에 따른 소비자 불만을 해소할 수 있지만 비용 부담이 커질 우려가 있어 득실을 따지고 있다”고 말했다.
복합결제가 도입되면 소비자의 항공권 결제 선택권은 △전액 현금 △전액 마일리지 차감 △현금+마일리지 사용 등 세 가지로 늘어난다. 항공권을 구입하기에 부족한 ‘자투리’ 마일리지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델타항공(미국) 유나이티드항공(미국) 루프트한자(독일) 등 해외 항공사들은 이미 복합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마일리지 유효기간 연장과 소비자가 원할 경우 신용카드로 쌓은 마일리지를 카드 포인트로 전환하는 방안도 요청했으나 항공사들은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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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마일+40만원에 LA 왕복…'자투리 항공 마일리지' 쓸 길 열린다
세계 최대 항공사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델타항공은 항공권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세 가지 결제 방식을 제시한다. ①전액 현금 구매 ②전액 마일리지 차감 ③현금+마일리지를 섞어 결제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12월 3일과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인천을 왕복하는 항공권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①1157달러 ②8만9500마일 ③8만4000마일+331달러 중 하나를 골라 결제할 수 있다. 현금 구매 좌석과 마일리지 좌석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만큼 소비자는 비수기는 물론 성수기에도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살 수 있다.
반면 대한항공 고객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①전액 현금(120만원) ②전액 마일리지(7만 마일) 차감 등 두 가지뿐이다. 별도로 지정된 마일리지 좌석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성수기엔 ‘하늘의 별 따기’다. 보유 마일리지가 7만 마일에 못 미친다면 현금 외에 다른 결제 방법은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 운영 방식에 ‘칼’을 빼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투리 마일리지도 쓸 수 있어
공정위가 마일리지 제도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건 두 항공사의 연간 마일리지 발행량과 사용량을 추정하는 작업이었다. 항공사들이 발행량에 비해 실제 사용량이 훨씬 적도록 설계했다면 매년 엄청난 규모의 마일리지가 자동 소멸돼 항공사 이익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에 고객들이 쌓은 마일리지는 10년이 지난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소멸된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부채로 떠안고 있는 미사용 마일리지는 각각 2조3017억원과 7057억원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각종 조사를 통해 마일리지 사용량이 발행량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정위가 이를 근거로 최근 양대 항공사 관계자들을 만나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고치려면 마일리지 사용처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해법이 현금과 마일리지를 섞어 쓰는 ‘복합결제’다. 인천~LA 왕복 항공권을 5만 마일+40만원에 사는 식이다. 양대 항공사가 복합결제를 도입하고, 델타항공처럼 성수기에도 쓸 수 있도록 허용하면 마일리지 사용이 대폭 늘어날 것이란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는 복합결제를 도입하는 대신 현금과 마일리지 사용 비율 책정, 성수기 때 마일리지 차감률을 높이는 방안 등 세부 사항은 항공사 자율에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두 항공사는 공정위의 요구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마일리지 자동 소멸에 따른 고객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데다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여지도 있어서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자투리 마일리지를 보유한 소비자에게 ‘잠자는 마일리지를 활용하면 저비용항공사보다 싸게 국적 항공기를 탈 수 있다’고 마케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전산시스템 업그레이드 비용이 드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유효기간 연장도 추진
공정위는 ‘적립 후 10년’인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항공사들에 요청했다. 항공사들이 보너스 좌석을 수요보다 적게 배정해 놓고 마일리지를 사용하지 못한 책임을 소비자에게 돌리는 건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공정위는 유효기간을 일괄적으로 10년에서 15년, 20년 등으로 늘려주는 게 아니라 보너스 좌석을 신청했지만 배정받지 못한 소비자에 한해 연장해주는 방안을 항공사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로펌 변호사는 “소비자가 보너스 좌석을 요청한 건 ‘권리 청구 행위’인 만큼 민법 168조에 따른 소멸시효 중단사유로 볼 여지가 있다”며 “이 경우 새로운 유효기간이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또 신용카드로 쌓은 마일리지의 경우 고객이 원하면 카드 포인트로 전환해주는 방안도 항공사에 요청했다. 이런 마일리지는 항공사들이 고객 로열티를 끌어올리기 위해 ‘덤’으로 준 게 아니라 신용카드사에 돈을 받고 ‘판매’한 것인 만큼 고객이 요구하면 미사용 마일리지를 카드 포인트로 바꿔주는 게 정당하다는 이유에서다.
항공사들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유효기간이 늘어나면 재무제표에 마일리지 충당금을 더 오랫동안 쌓아야 하는 만큼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다”며 “카드 포인트 전환 역시 가뜩이나 어려운 항공사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오상헌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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