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로 한·일 양국 관계가 냉각된 가운데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1위를 목표로 내건 삼성전자가 도쿄에서 반도체 기술 청사진을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삼성이 반도체 미래 먹거리로 삼은 파운드리도 겨냥했단 점에서 '적지'에서 핵심계획을 밝힌 것이다.
삼성전자는 4일 오후 1시 일본 도쿄 시나가와 인터시티 홀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SFF) 2019 재팬' 행사를 열었다. 파운드리 포럼은 삼성전자가 주요 국가를 돌며 고객사나 업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파운드리 사업 청사진과 신기술을 소개하는 행사다. 이날 행사는 미국, 중국, 한국에 이어 올해 4번째 여는 포럼이다.
포럼에는 삼성전자 정은승 사장을 비롯한 파운드리사업부 고위 관계자들이 총출동했다. 정 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포럼을 통해 전 세계 고객사들과 투명하고 신뢰 있는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며 "일본에서의 활동도 변함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삼성전자는 포럼 핵심 발표(키노트 스피치)에서 일본이 한국에 1차 수출규제 조치를 가했던 첨단 극자외선(EUV) 공정과 관련한 설명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 아베 정부는 지난 7월 한국 상대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했다. 이중 EUV용 포토레지스트(감광액)이 포함되면서 일본 정부가 삼성전자의 차세대 먹거리를 콕 집어 겨냥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EUV 공정은 삼성전자가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로 가기 위해 대만 TSMC와 경쟁을 벌이는 핵심분야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이같은 민감한 시기에도 일본에서 행사를 진행한 것은 연초 발표한 '2030년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및 파운드리) 세계 1위'에서 파운드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해서다.
삼성전자는 올 초 파운드리 사업부를 적극 육성, 세계 파운드리 시장 1위 TSMC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19.1% 점유율로 TSMC(48.1%)에 이은 2위에 올랐다. 작년 말 기준 TSMC 점유율은 50.8%, 삼성전자는 14.9%였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격차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을 제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전자가 TSMC와 경쟁하는 EUV 공정을 활용한 수주전(戰)에서 차질이 빚어졌다. 실제 삼성전자 고객사들은 물량을 TSMC로 돌려야할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이 TSMC는 대규모 투자로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다시 벌리는 데 힘쓰고 있다. 5월에는 올 하반기 인력 3000명 채용, 4조73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 자금은 5나노와 3나노 초미세공정 개발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사업부만 놓고 보면 TSMC가 삼성에 비해 연간 2배 이상의 인력을 뽑는 것이다.
파운드리 업체의 핵심 경쟁력은 미세공정 기술력에 달렸다.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칩의 크기를 줄이고 전력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포럼을 여는 목적 또한 최신 기술을 고객사에 홍보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현재 TSMC와 5나노 양산 및 3나노 공정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TSMC는 삼성전자보다 앞서 7나노 양산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각각 2020년과 2022년을 목표로 5나노와 3나노 공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1년에는 '5나노 플러스(5㎚+)' 미세공정 기술을 파운드리에 적용해 반도체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5나노 수준 미세 회로를 그리기 위해 파장 길이가 기존 대비 14분의 1 수준인 EUV 공정을 활용하고 있다. 이 기술을 채택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TSMC보다 먼저 5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승기'를 가져왔다. 작년 10월 삼성이 7나노 생산을 시작했다고 밝힌 지 반년 만에 성공한 것이다.
5월에는 3나노 공정 도입 계획을 밝힌 지 1년 만에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했다. 이날 도쿄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3나노 공정에 대한 기술을 소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일본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삼성의 최신 기술을 알리는 자리"라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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