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임금격차 공개 강행…노사갈등 또다른 불씨 우려

입력 2019-09-05 17:29   수정 2020-11-06 19:08


정부가 올해 말부터 업종별, 기업 규모별 임금을 공개하기로 했다. 평균임금뿐 아니라 상위 25%에 해당하는 근로자와 하위 25% 근로자가 얼마를 받는지, 대졸과 고졸의 임금 차이는 얼마인지 등도 알 수 있게 된다. “기업의 자율적 임금 격차 완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적정 임금 수준을 놓고 노사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8개 부처는 5일 당정 협의를 거쳐 ‘공정경제 성과 조기 창출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고용부가 임금 분포 현황을 매년 공표(올해는 12월, 내년부터는 7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1인 이상 사업체 중 3만3000곳의 임금 분포를 조사하며 근로자 100만여 명이 대상이다. 기업 규모(근로자 수 기준)와 업종 등에 따라 근로자 성별, 연령, 학력, 근속연수 등의 기준을 적용해 임금 분포를 낸다.

개별 기업의 임금은 공개하지 않는다. 업종과 규모별로 임금 분포가 공개되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이 임금 인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직원 110여 명을 둔 와토스코리아의 송공석 대표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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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 中企·대졸 - 고졸 '임금差'까지 공개…"사회갈등 더 커진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에 더해 ‘정책 불확실성’마저 커졌다고 호소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요. 어제(4일) ‘투자 확대에 정책 역량을 총동원하겠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던 정부가 오늘 ‘규제폭탄’을 쏟아내는 게 말이 됩니까.”(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5일 공개한 23개 공정경제 개선과제를 접한 기업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경제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기업 기(氣) 살리기’에 나서도 모자랄 시점에 새로운 규제를 내놨기 때문이다. 노사 갈등을 우려한 기업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업종별·규모별 임금분포를 공개하기로 한 데 대해 재계는 향후 상당한 후유증을 낳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노사 갈등, 중기 기피 부른다”

이번 대책에서 중소기업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오는 12월 첫 공개될 ‘기업특성별 임금분포 공개’ 정책이다. 업종별, 규모별, 성별, 연령별, 학력별, 근속연수별 임금이 공개되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 직원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사 자율로 임금 격차를 해소하도록 돕기 위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상당수 중소기업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부담이 여전한데 정부가 또 다른 시한폭탄을 던진 것 같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당초 고용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임금분포 공시제’를 추진했다. 이 제도는 업종뿐 아니라 개별 기업의 임금분포까지 공개하는 훨씬 강도가 센 방안이었다. 정부는 경제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업 간, 직종 간 임금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관련 법(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법 개정이 필요없는 업종별 임금 공개부터 하기로 한 것이다.

산업계는 그러나 기업 규모별, 업종별 임금이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중소기업 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중소기업은 일은 많지만 급여는 적다는 사실만 공인되는 셈”이라며 “중소 제조업 기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인식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는 임금 상승은 기업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2, 3탄 예고한 공정경제 규제 시리즈

산업계는 정부가 대기업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장치를 대거 만든 데 대해서도 “진단도, 처방도 잘못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장기업 사외이사 관련 규제를 강화한 게 대표적이다. 법무부는 독립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사외이사가 한 회사에 6년 이상 몸담지 못하도록 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총수의 전횡을 막으려면 사외이사가 몸담고 있는 기업의 생리를 잘 파악해야 하는데 재임 한도를 정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며 “사외이사의 적절한 견제로 이사회가 잘 운영되는 기업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한 데 대한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나의 손자회사를 여러 자회사가 공동 출자하는 걸 금지시켰다. 또 지주회사가 자회사들로부터 받는 경영컨설팅 수수료와 부동산 임대료 내역도 공시하도록 했다. 유정주 팀장은 “정부 정책에 따라 지주사로 전환했더니 이제는 ‘알고 보니 지주사 제도에 문제가 많다’며 규제폭탄을 날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벌써부터 ‘공정경제’란 이름을 달고 나오는 제2, 제3의 규제 시리즈를 걱정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날 당정 협의를 마친 뒤 “오늘 발표한 건 (공정경제 관련 규제 시리즈의) 1탄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며 새로운 규제를 예고해서다.

한 대기업 임원은 “규제 완화에 총력을 기울인다면서 새로운 규제를 쏟아내는 정부 정책에 피로감을 느끼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김진수/오상헌/도병욱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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