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개발국 중에는 인플레이션이 상식을 뛰어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다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를 봐도 높은 인플레이션은 정정 불안이나 정치적 후진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고 차베스 집권 이후 베네수엘라가 딱 그 모델이다. 극단적 선동정치, 비상식적 독재가 경제 발전의 싹을 밟고, 민초들은 인플레이션 나락에 빠진다. ‘고통의 일상화’다.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친 것을 ‘고통 지수’라고 하는 이유다.
물가가 연간 수백%씩 오르는 통제 불능 상태를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났을 때, 정부가 과도한 재정 확대로 통화량을 너무 늘렸을 때 빚어진다는 게 통설이다. 멀리는 1차 대전 뒤 한 달 새 신문값이 1000배 올랐던 바이마르공화국 사례가 있고, 가까이는 물가 상승률이 100만%를 오르내리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있다.
살인적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생생한 실례가 짐바브웨다. 빵 1개가 3000억 짐바브웨 달러였고, 물가는 매일 두 배씩 오르기도 했다. 2000~2009년 이 나라 물가가 5000억%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독재정권이 국민 불만을 무마하려고 화폐를 남발한 결과였다. 결국 미국 달러를 공용화폐로 채택하고, 자국 돈은 폐기하고 말았다. ‘국가 시스템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 화폐’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주 국가의 붕괴 상황이었다.
37년간 쇠주먹으로 권좌를 유지했던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95)이 싱가포르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41세 연하 아내에게 권력을 넘기려다 쫓겨난 지 2년 만이다. 이 나라 국민 사이에는 “그를 위해 낭비할 눈물은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외신은 전한다. 점잖게 말해 그 정도지, 유린당한 짐바브웨인들 속마음은 어떻겠나. 스스로의 됨됨이는 모른 채 “나요, 나!”라며 나서는 이들이 공직의 무서움을 깨닫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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