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제 칼도 안뽑았는데…206대 1 '청약 광풍'만 불러

입력 2019-09-10 17:27   수정 2019-09-11 01:35

정부가 공공택지와 함께 민간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려는 이유는 나날이 상승하는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분양가를 잡기 위해서다. 3.3㎡당 5000만원에 육박하는 재건축 아파트 일반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자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근본적 해법인 ‘공급 확대’ 대신 인위적인 ‘가격 통제’에 나서자 오히려 부작용부터 나타나고 있다.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규제가 오히려 집값을 자극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극약처방’ 안 통하나

이문기 국토교통부 주택도시실장은 지난달 12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확대 적용을 위한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지난 6월부터 서울 집값이 상승 전환하는 등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상승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했던 2007~2014년에 서울 집값이 안정세를 보였다는 근거를 들어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책 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도 “재개발·재건축 사업개발 이익이 줄고 투기수요가 감소해 서울 집값이 1.1%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며 “상한제 시행으로 분양가가 하락하면 고분양가가 주변 기존 주택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도 차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면 분양가가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낮아져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 기대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분양가 상한제가 새 아파트 공급절벽 현상을 야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신축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더 커졌다. 대책의 타깃이었던 지역 집값이 더 오르는 현상도 나타났다. KB부동산에 따르면 강남구는 8월 셋째주와 넷째주에 각각 0.24%, 0.23% 상승하면서 서울 집값 상승을 견인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의 직격탄을 맞은 재건축 대상 아파트값도 3주간 하락세를 보이다 지난 6일 0.04% 오르며 상승전환했다.

청약시장 과열

신축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에 30~40대 무주택자들이 앞다퉈 청약에 뛰어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에 이어 수도권까지 청약 열기가 번져 경쟁률과 청약 당첨 가점이 치솟았다. 가점이 상대적으로 낮은 실수요자가 청약 경쟁에서 밀려나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 4일 인천 송도국제도시 3개 단지 청약에는 약 11만 명의 예비 청약자가 몰렸다. ‘송도 더샵 센트럴파크 3차’는 전용 80㎡ 33가구 모집에 3만3801명이 몰려 최고 경쟁률 1024 대 1을 기록했다. 같은 날 청약을 받은 송도국제 F20-1블록 ‘송도 더샵프라임뷰’는 398가구 모집에 4만5916명이 몰려 평균 115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서울에서도 기록적인 청약 경쟁률이 나오고 있다. 인기 지역에선 최고 경쟁률이 100 대 1을 훌쩍 넘고 청약 가점도 70점대로 치솟았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발표한 8월 들어 분양한 단지들은 지난 7월과 비교해 경쟁률이 더 높아졌다. 이달 수도권 분양단지의 청약 경쟁률은 서울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 2차 75 대 1,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 204 대 1,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 55 대 1, 서대문 푸르지오 센트럴파크 44 대 1 등이다. 7월 분양한 서울 백련산 e편한세상은 3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는 14 대 1, 서초 그랑자이는 4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당첨 커트라인도 치솟고 있다. 서울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 당첨 평균 가점은 67점을 기록했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 15년(16점), 무주택 기간 15년(32점), 부양 가족 3명(20점) 등의 조건을 갖춰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아파트 공급을 늘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양질의 아파트가 공급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야 시장 참여자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정철/최진석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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