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개발은 베트남이 중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관문이다. 사람과 물자가 빠르게 오갈 수 있어야 나라 전체의 부를 늘릴 수 있다. 과도하게 외국인직접투자(FDI)에 의존하고 있는 베트남 경제 구조상 내수 시장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건은 물류다. 베트남 정부가 간절하게 육성하고자 하는 자동차 산업만해도 자동차가 달릴 잘닦인 도로가 있어야 자체 생존이 가능하다.
베트남 정부가 총 공사 규모 6조원에 달하는 북남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내년 4월 착공 예정인 이번 대역사(大役事)는 PPP(민관협력사업)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열악한 정부 재정과 차관에 의존하는 기존의 인프라 개발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게 베트남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다. 이를 위해 베트남 정부는 관련 법안을 마련 중이다. 기존에 규칙(decree) 형태로 있던 것을 정식 법으로 격상시킴으로써 민간의 참여를 독려하려는 의도다. 계획상으로는 다음달 국회에 상정되고, 내년 5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북남고속도로 사업은 예외적으로 소급 적용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최초의 ‘인프라법’은 민간투자 인프라사업에 대한 법체계를 처음으로 정립한다데 의미가 있다. 박재현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하노이 소장은 “정부 보증에 관련된 문구를 넣기로 한 것이 이번 법안의 핵심”이라며 “공공투자법 등 다른 법률과의 모순이나 충돌 문제를 이번 기회에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베트남 정부는 법률 초안에 최소운영수익보장(MRG)를 포함시켰을 정도로 투자 유인책 강화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MRG 조항은 한국에서도 논란이 됐던 제도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을 건설, 운영한 호주계 맥쿼리펀드가 MRG를 통해 과도한 이익을 보장받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협약을 통해 MRG 조항을 없앤 바 있다.
베트남 정부가 ‘인프라법’ 제정에 주력하고 있는 데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민간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게 첫번째 목표다. 베트남 인프라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 중 상당수가 공사대금 지연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포스코건설 등 하노이~하이퐁 고속도로를 건설한 한국 건설업체들도 여태껏 공사 대금 중 일부를 받지 못하고 있다. GS건설 역시 수년째 베트남 정부로부터 공사 대금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 8구간으로 나눠 진행될 북남고속도로만해도 지난 7월 첫번째 입찰을 진행했으나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건설사 중에선 현대건설이 유일하게 참여했을 뿐, 일본 기업들은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노이 현지 소식통은 “중국 기업들이 대부분이어서 베트남 정부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차이나 머니’에 대한 경계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베트남 정부로선 ‘인프라법’ 제정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건설사들은 자국 정부로부터 ‘제로’ 금리로 돈을 빌려 이번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인프라법의 제정 여부와 관계없이 베트남 인프라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가 중국 업체를 꺼리는데엔 기술력에 관한 의구심도 한 몫하고 있다. 하노이 시내를 관통하는 메트로 2A 구간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업체가 건설해 지난해 시범운행까지 마쳤으나 안전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아직도 운행을 못 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 정부는 ‘인프라법’에 담을 구체적인 조항을 최종 확정하기 위해 월드뱅크 등 국제기구를 비롯해 한국, 일본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선 주베트남대사관 내 국토관(참사관)과 KIND가 한국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조언하고 있다. 일본은 ADB를 앞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베트남 정부는 MRG에 대한 자국 내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해 초안에 있던 MRG 조항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에 이익과 위험을 민·관이 각각 절반씩 나누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 보증과 관련해선 북남고속도로 입찰 시 정부측에서 교통예측량이 포함된 결과보고서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통량에 대한 최소보증을 하겠다는 것으로 운영자 입장에선 매력적인 조건이다. 요금 징수와 관련해 물가 상승분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포함될 전망이다. 입찰 공고에 장기 물가상승예측자료에 기반한 요금 인상 로드맵이 제시되는 식이다. 불가항력적이거나 정부의 귀책으로 인해 계약을 중도에 해지해야한 할 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등 민간 사업자을 위한 출구 전략이 법안에 반영될 지도 관심 사항이다.
PPP를 명문화할 베트남의 첫 ‘인프라법’이 예정대로 시행된다면 이는 아시아 인프라 개발 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인도, 동남아시아 등 신남방 각국의 인프라 개발자금 유치 경쟁에서 베트남이 한 걸음 앞서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PPP는 민간 건설사에 이익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고, 손실은 최소화할 것을 약속하는 일종의 계약 방식이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동남아 각국 정부는 인프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수도 이전을 발표한 인도네시아만해도 인프라 수요가 엄청나다. 해외 자금 유치를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실행가능갭 펀드(Viability Gap Fund, 건설 단계에서의 금융지원을 위한 펀드) 설립, 입찰 자격기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 등의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더욱 적극적이다. 그는 2017년 4월에 ‘건설, 건설, 건설(Build, Build, Build)’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공적개발원조(ODA) 등 모든 가용 자금을 해외로부터 유치해 남북회랑철도(북쪽 클락 공항과 남쪽 깔람바를 잇는 프로젝트) 등 총 153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를 짓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ADB와 JICA(일본국제협력기구)를 앞세워 대규모 자금 지원에 나섰다. ADB는 지난 5월 27억달러 규모의 차관 제공을 승인했다. 필리핀 정부는 1530억달러 중 적어도 100억달러 가량을 중국에서 조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돈이 어디서 오든 상관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로 해외 자본 유치에 ‘올인’하고 있다.
하노이=박동휘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