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블룸버그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찰스 리 홍콩거래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인수를 제안하면서 “우리와 런던거래소를 하나로 묶으면 앞으로 수십 년간 세계 자본시장이 새롭게 정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두 거래소 모두 훌륭한 브랜드와 자본력, 입증된 성장 실적을 갖추고 있다”며 “우리는 동서양을 연결하고, 금융시장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거래소는 두 회사가 합병하면 런던거래소에 주식을 ‘이중 상장’하겠다는 전략도 밝히고 있다. 런던거래소 측은 “이번 인수 제안은 조건부이고 초기 수준”이라며 “고려해본 뒤 추가 발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거래소는 2000년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공개(IPO)를 완료한 뒤 지주회사 아래 독립기구로 투자사를 두고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해왔다. 2012년에는 런던 금속거래소(LME)를 14억파운드(약 2조6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홍콩거래소의 이번 인수 제안은 최근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이어지면서 금융자본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기업 환경이 위축되면서 나온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홍콩거래소는 혼란스러운 홍콩의 정치적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런던거래소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날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면 홍콩 내 기업 환경이 타격을 받아 홍콩 신용등급이 더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6일 피치는 3대 신용평가사 중에 처음으로 홍콩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1단계 내렸다. 홍콩 신용등급이 떨어진 것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인 1995년 이후 24년 만이다.
이번 인수 제안은 중국이 외국인 자본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기도 하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은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연간 3000억달러(약 357조원)이던 외국인 자본에 대한 주식, 채권 투자액 상한제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미·중 무역전쟁 영향 등으로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관측된다.
홍콩거래소가 인수 제안을 통해 역으로 런던거래소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란 분석도 있다. 런던거래소는 지난달 초 부채를 포함해 270억달러(약 32조2500억원)에 금융데이터 제공업체 리피니티브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런던거래소는 당시 “주식부터 파생상품에 이르기까지 금융정보 시장에서 블룸버그와 함께 양대 산맥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밝히기도 했다. 홍콩거래소는 런던거래소에 리피니티브와의 인수 계약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이번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거래소는 지난해 세계 IPO 시장에서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작년에 홍콩거래소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125개사에 달한다. 조달 자금은 총 365억달러(약 43조6000억원) 규모로, IPO 시장점유율 17.6%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이래 가장 높은 성적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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