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의 '승부수'…청와대 앞에서 '조국 파면' 삭발 투쟁

입력 2019-09-16 17:34   수정 2019-09-17 01:1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며 삭발을 감행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당수 시절 정부·여당에 맞서 단식을 한 적은 있어도 제1 야당 대표가 ‘삭발 투쟁’에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대여(對與) 투쟁’ 동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최근 보수 진영에서 거론되는 ‘반문(반문재인) 보수 연대’의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당, ‘삭발 릴레이’ 돌입

황 대표는 이날 오후 5시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삭발식을 했다. 그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에 항거하겠다는 의지를 삭발로 다짐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조 장관을 향해선 “마지막 통첩이다.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와 검찰 수사를 받으라”고 했다. 삭발식이 끝난 뒤 황 대표는 이날 밤 12시까지 광장에서 당 소속 의원들과 함께 농성을 벌였다.


황 대표는 앞서 이날 오전 열린 비공개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삭발 계획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례적으로 정장이 아닌 짙은 회색의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회의를 주재했다. 한국당 내에선 지난 9일 조 장관이 임명된 뒤 지도부 단체 삭발 및 단식, 부산~서울 국토 종단 등 보다 강력한 투쟁을 펼쳐야 한다는 주문이 수차례 나왔다. 황 대표는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박인숙 한국당 의원의 삭발식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삭발 의사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강구하고 추진하겠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당 소속은 아니지만, 이언주 무소속 의원도 10일 조 장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했다.

황 대표가 직접 삭발 투쟁에 나선 데는 조 장관 임명 이후 지도부의 원내외 투쟁에 대한 회의론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상황에서 내부 결속력을 다지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황 대표로선 어느 야당 대표도 하지 않은 삭발이란 승부수를 던져 국면 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조 장관 임명을 계기로 현 정권과 여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커지고 ‘무당층’은 늘고 있는데도 한국당 지지율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아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수만 명의 당원을 동원해 집회를 여는 것만으론 정부·여당에 저항할 수 없다’는 당내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고 전했다. 삭발식 장소를 국회가 아니라 청와대 앞으로 정한 것은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제1 야당 대표의 면모를 부각시키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황 대표의 삭발 감행에 대해 “우리 당 투쟁의 비장함을 표시한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에 이어 한국당 의원들은 ‘릴레이 삭발’을 이어갈 계획이다.

여권 “황교안, ‘정치 희화화’ 말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이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황 대표에게 ‘염려와 걱정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강 수석은 삭발식 직전 분수대 광장에서 황 대표와 만나 짧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황 대표는 “조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고 말했고, 강 수석은 “(대통령에게 말을) 잘 전달하겠다”고 답했다고 고 대변인은 전했다. 강 수석은 당초 이날 국회를 방문해 황 대표를 만나려 했으나 황 대표가 거절하자 삭발식 현장을 찾았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汎)여권은 황 대표 삭발을 두고 ‘구태 정치의 산물’ ‘정치의 희화화’ 등의 표현을 써 가며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 나라의 행정 수장이 있는 곳 앞에서 제1 야당 대표가 삭발하는 게 얼마나 후진적인 정치 행태냐”며 “한국당이 자극적인 이벤트를 동원해 정치를 희화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대안정치연대도 논평에서 “절대 권력을 견제해야 할 제1 야당이 오합지졸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국당 내에선 황 대표의 이번 삭발을 계기로 ‘범보수 통합’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황 대표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수 통합의 물꼬를 트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헌형/성상훈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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