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감원 칼바람…"연말이 더 두렵다"

입력 2019-09-16 17:41   수정 2019-09-17 00:43


‘감원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 조선에 이어 올 들어 자동차, LCD(액정표시장치), 기계, 중공업, 항공 등 산업계에 인력 구조조정 태풍이 거세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진 데다 미·중 무역분쟁, 한·일 경제전쟁 등으로 대외 여건이 나빠지면서 대기업마저 생존을 위한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추세다.

16일 산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자동차는 최근 이해진 제조본부장 명의로 인력 구조조정 방침을 담은 담화문을 냈다. 내년 생산하는 신차 XM3의 유럽 수출 물량(약 8만 대)을 확보하지 못하면, 부산공장 생산직(1800명) 근무 방식을 하루 2교대에서 1교대로 전환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내용이다. 생산량이 연간 24만 대에서 12만 대로 줄어들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1교대 근무로 바뀌면 최대 절반가량(900명)이 ‘남는 인력’이 된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10분기 연속 적자를 낸 쌍용자동차는 이달 순환휴직(안식년 제도) 시행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도는 지난 7월 임원을 20% 이상 줄이고 직원 100여 명의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전자업계에도 ‘감원 한파’가 불어닥쳤다.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에 이어 올 하반기에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방침이다. 업계에선 희망퇴직 규모가 지난해(2000여 명)보다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5년차 이상 생산·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LG전자 휴대폰부문 직원 300여 명은 이미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항공(아시아나항공), 기계·중공업(현대일렉트릭 두산중공업), 조선(한진중공업) 업계도 마찬가지다. 간판 기업들이 무급휴직, 희망퇴직 등을 통한 강도 높은 인력 조정에 나섰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유통, 정보기술(IT), 금융 등 산업계 전반이 구조조정 태풍에 휩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줄줄이 감원에 들어가면 관련 부품업계도 연쇄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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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일감절벽→감원…車·LCD 이어 유통·IT까지 'L의 공포'
산업계 전반 인력 구조조정 확산…"올 연말이 더 두렵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전기전자 계열사 현대일렉트릭 임원들은 추석 연휴 직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고강도 인력 구조조정 방침을 세운 회사 측이 인사담당자를 통해 전 임원에게 일괄 사직서를 받은 뒤 40%를 선별해 퇴진시키겠다고 통보했다. 임원 22명 가운데 9명가량이 옷을 벗어야 한다.

이 회사는 조만간 직원 구조조정에도 나선다. 사업부문을 20개에서 4개로 줄이고, 불필요한 인력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정명림 현대일렉트릭 사장은 “국내외 시장 상황이 갈수록 나빠져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은 현대일렉트릭만의 얘기가 아니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만도, 아시아나항공, 두산중공업, 한진중공업 등 다른 기업들도 ‘구조조정 태풍’에 휩싸였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계가 ‘L(layoff·해고)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IT·전자업계까지 불어닥친 감원 바람

‘감원 칼바람’이 매섭다. 전자 자동차 건설 조선 유통 정보기술(IT) 등 전 업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경제전쟁이 겹치면서 실적 악화에 비상이 걸린 기업들이 생산을 줄이기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의 친(親)노동정책, 기업 경영을 옥죄는 거미줄 규제 탓에 국내 투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도 원인이 됐다는 게 산업계의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경제를 떠받쳐온 IT·전자업계의 감원 움직임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여겨졌던 업종에서 잇따라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어서다. 중국발 공급과잉 탓에 실적이 급격히 나빠진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2000명 이상의 생산직 인력을 내보냈다. 올 들어서도 적자(상반기 5000억여원 영업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또다시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업계에서는 최대 6000명이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이 회사 직원 수는 지난해 6월 말 3만3522명에서 올 6월 말 2만9147명으로 1년 새 4375명 줄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최근 국내 8세대 LCD 생산 라인 절반을 가동 중단하면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업계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한 LG전자 MC사업본부는 경기 평택에서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서 관련 임직원을 경남 창원 사업장으로 전환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300명 이상의 직원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업계도 구조조정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의 노동조합은 지난 3일 고용 안정을 보장하라며 장외 집회를 열기도 했다. 넥슨은 올해 초 회사 매각이 무산된 이후 일부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직원 100명 이상이 대기 발령 상태다.

일감절벽에 대규모 감원 나선 車업계

전통 제조업체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자동차업계는 일부 업체만 빼고 모두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일감절벽’에 맞닥뜨린 르노삼성자동차는 내년부터 생산직 근무 방식을 2교대에서 1교대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교대 전환이 이뤄지면 부산공장 생산직(1800명)의 절반가량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적자가 누적된 쌍용자동차는 이달 순환휴직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GM은 창원공장을 2교대 근무제에서 1교대 근무제로 바꾸기로 했다.

실적 부진으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던 조선업계와 건설업계도 언제 다시 감원 칼바람이 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대형 조선사의 구조조정은 일단락됐지만, 대한조선 대선조선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등 중소형 조선사 대부분은 여전히 생존 여부가 불투명하다. 건설회사들도 해외수주 부진에 추가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기업들의 신규 채용 규모도 줄어드는 추세다. 경직된 국내 노동법상 한번 채용하면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강성 노조 탓에 구조조정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노조의 ‘등쌀’에 직접 인력 감축에 나서지 못하는 기업들이 ‘소극적 구조조정’ 방안으로 채용 축소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근 설문 조사(매출 상위 기업 131곳 대상)에 따르면 올해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줄이겠다고 한 기업이 전체의 33.6%에 달했다. ‘늘리겠다’고 답한 기업은 17.5%에 그쳤다.

장창민/고재연/도병욱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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