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빅데이터 규모가 아무리 커도 활용성이 떨어지면 소용없다. 한국이 그런 경우다. 밖에서는 공공기관에 축적된 의료 데이터의 양과 질에서 한국을 잠재력이 매우 큰 국가로 평가한다. 하지만 데이터 활용에서는 경쟁력이 확 떨어진다.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이 선진국 수준으로 정비가 안 된 탓이다.
이번 빅데이터 플랫폼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의료정보를 하나로 모아 볼 수 있게 됐다고 하지만, 이름·생년월일·성별로만 환자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주민등록번호는 식별코드로 쓸 수 없다.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다른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인식해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15%에 달해 데이터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계는 가명 정보를 연구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언제 국회에서 처리될지 기약이 없다.
임상 현장에서 나오는 병원 데이터의 통합도 넘어야 할 벽이다. 병원마다 정보 기록방식이 다른 데다 병원 안에 있는 데이터를 밖에서 활용하는 게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제약사 등이 의료정보를 신약개발에 활용할 수 없는 것도 한계점이다.
복지부는 의료 빅데이터 구축을 고속도로 건설에 비유했지만 ‘법 따로 플랫폼 따로’ 상황을 해소하지 못하면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등 선진국은 보건의료제공자, 영리사업자, 대학 및 비영리 연구자의 의료 빅데이터 활용도에서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이들을 따라잡으려면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상 규제를 하루빨리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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