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경제를 움직인 화폐의 역사’란 부제가 붙은 <돈>은 야프섬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을 쓴 펠릭스 마틴은 “야프섬의 진짜 화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근원적 신용거래 및 정산시스템이었고, 페이는 이 시스템을 추적, 기록하는 보조수단이었다”고 말한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야프섬 주민이 물고기와 코코넛, 돼지, 해삼 등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채권과 채무가 발생해 쌓였다. 이들 채권과 채무는 사후정산을 통해 상쇄됐다. 거래 당사자는 서로 원한다면 페이를 교환해 이월된 미결제 잔액을 정산했다. 즉 페이는 야프섬 주민 간 매매거래에서 발생한 미결제 신용 잔액이 기록된 증거물에 불과했다.
저자는 페이에서 출발해 고대 문명과 사상, 그리스·로마의 금융사, 중세 신흥 상인계급의 발흥과 은행의 탄생, 화폐정책·화폐 주조를 두고 벌어진 국왕과 의회의 줄다리기, 존 로크와 애덤 스미스, 존 로의 화폐론, 세계 주요 금융위기 등을 두루 살피며 전통적 화폐이론과는 다른 대안적 관점으로 화폐를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저자에 따르면 화폐는 물물교환을 대체하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이다. 화폐의 핵심은 ‘양도 가능한 신용’이다. ‘기발하고 탁월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화폐 덕분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거래하게 됐고 사회적 이동이 가능해졌다. 저자는 “역사를 되짚어보면 물물교환 대신 화폐를 사용해 거래하면 더 편할 것이라는 생각보다 채권을 양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경제와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꿔놨다”고 말한다.
그는 화폐를 가치이자 사회적 기술이란 개념으로 이해해 미래의 화폐와 이를 운용할 지혜를 근원적으로 다시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화폐를 물리적 사물로 이해하면 우리가 위험을 측정하고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폐본위(한 나라의 화폐 단위를 규정하는 근거)는 변하지 않는 것이 돼야 하며 여기서 수많은 문제가 비롯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화폐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내려면 경제적 가치의 기준이 고정돼서는 안 된다”며 “고대 아테네 정치가 솔론이 보여줬듯이 민주적 정치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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