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아베 '미국 환대 외교'의 허와 실

입력 2019-09-19 17:56   수정 2019-09-20 00:15

‘윌리-니키 전문(Willy-Nicky telegrams)’이라는 사료가 있다. 20세기 초 독일의 빌헬름 2세와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제3국 언어인 영어로 작성해 사적으로 주고받은 전보문을 일컫는다.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차르의 비밀문서가 대량으로 공개되면서 드러난 이 전문에서 두 제국의 황제는 스스로를, 그리고 상대방을 ‘윌리(빌헬름)’와 ‘니키(니콜라이)’라는 영어 애칭으로 부르며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사촌지간이기도 했던 두 사람은 호화 요트에서 속마음을 터놓으며 의기투합하던 사이기도 했다. 둘 사이를 오간 비밀 전문의 내용만 보면 독일과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했던 적대국이 맞나 싶을 정도다. 국익에 대한 냉철한 계산은 지도자 개인 간 친분을 앞섰던 것이다.

당장은 실속 없는 對美 외교

최근 국제사회 주요국 지도자 중 빌헬름 2세와 니콜라이 2세에 비견될 만큼 친밀도를 과시하는 인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격의 없이 ‘도널드’와 ‘신조’로 부른다는 두 정상은 수많은 골프회동을 비롯해 각급 모임에서 ‘브로맨스’를 과시해왔다. 특히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간도, 쓸개도 다 내줄 것인 양 ‘오모테나시(극진한 대접) 외교’를 펴왔다.

하지만 공들인 것에 비해 지금까지 일본은 의외로 대미 외교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일이 주축을 이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며 아베 총리를 당황하게 했다. 아베 총리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국난(國難)’으로 거론하며 북한을 향해 한껏 적의를 키울 땐 세 차례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아베 총리를 ‘뻘쭘하게’ 했다. 지난달 프랑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선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무역협정에 합의하라며 일본을 압박했다. 아베 총리는 중국이 구매를 거부한 미국산 옥수수 250만t을 수입하기로 하는 덤터기를 쓰기도 했다.

美, 결정적일 때 日 편들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친구’라고 부르면서도 국익이 걸린 문제에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일본 야당은 ‘조공 외교’라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언론도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아사히신문)이라고 꼬집는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기존의 외교정책을 바꿀 기미가 없다. 그동안 들인 공을 허사로 할 수 없고, 트럼프 대통령이 아쉬울 때마다 도와줬으니 결정적인 시점에 미국이 일본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도 믿기 때문일 것이다.

때마침 한·일 관계가 급속하게 경색된 시기에 한·일 양국 정상이 미국 뉴욕에서 정면 외교대결을 펼치게 된다. 유엔 총회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2~26일 미국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한다. 일본도 25일 미·일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공표했다. 한·미·일 3개국 간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얽힌 만큼 한·미, 미·일 정상회담 결과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마도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지금껏 챙기지 못한 오모테나시 외교의 결실을 이번에는 반드시 챙기려 할 것이다. 일본의 외교 공세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단 생각이다.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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