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기 왕산종묘 대표 "굶어 죽어도 씨앗은 아끼는 게 내 철학"

입력 2019-09-19 17:47   수정 2019-09-20 00:27

“‘농부아사 침궐종자(農夫餓死 枕厥種子: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가 저의 철학입니다.”

제28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경영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권혁기 왕산종묘 대표(57·사진)는 “앞으로도 꾸준히 씨감자 분야를 연구해 농민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대산농촌문화상은 대산농촌재단이 농업과 농촌 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농업계 최고 권위 상이다. 교보생명 창립자 대산 신용호 선생의 뜻을 기려 1991년 제정됐다. 28년간 124명(단체 포함)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권 대표는 안정적 씨감자 공급시스템을 구축해 농가 경영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39년간 씨감자를 재배한 권 대표는 2017년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출신이다. 강원 강릉 왕산면에 있는 왕산종묘는 매년 씨감자 1200t가량을 전국 농가에 공급한다. 취급하는 씨감자 품종만 13개에 달한다. 단오, 백작, 왕산 등 새로운 품종의 감자를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권 대표는 “국내 감자 시장은 ‘수미’ 품종이 대부분을 차지해 품종 다양화가 시급했다”며 “1845년 시작된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도 소수 품종만 재배했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종자 역할을 하는 씨감자 연구를 통해 다양한 품종을 제공한다면 감자 수급 조절의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해 본격적으로 씨감자 재배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론적 지식을 쌓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집안의 장남인 권 대표는 강릉중앙고(옛 강릉농고)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 뜻을 접고 곧바로 감자 농사를 짓던 아버지와 함께 일했다. 그랬던 그가 2009년 강원농업마이스터대 감자학과를 찾았다. 본격적으로 씨감자를 공부하기 위해서다. 고랭지농업연구소 감자팀과 강릉원주대 생명과학대를 찾아가 육종 기술 등을 배우기도 했다. 그는 “탄탄한 이론이 뒷받침될 때 풍부한 현장 경험이 제대로 빛날 수 있다는 걸 느꼈다”며 “감자는 배울수록 어려운 분야가 새롭게 등장하기 때문에 수시로 관련 기관을 찾아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맞추기 위해 품종 개발에 앞장서겠다는 게 권 대표의 목표다. 그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갈수록 오히려 감자 수요가 늘어나는 편”이라며 “우리나라가 강대국으로 발전할수록 감자 소비량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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