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경 한 세기나 혁명과 반(反)혁명으로 얼룩진 프랑스가 그랬고, 허울 좋은 혁명이 포퓰리즘으로 퇴색해 동반 몰락한 중남미가 그랬다. 초심은 오래 보관하기 힘들고, 역사는 시간과 공간에서 되풀이된다.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 본성”(존 롤런드)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덜 나쁜 정치체제라는 민주주의도, 이응준은 ‘상하기 쉬운 생선’이라고 야박하게 평했다. 민주주의 원조인 영국조차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풀어갈 정치력이 실종된 아마겟돈 상태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전통 가치들을 허물며 하루하루가 예측불허다. 멀쩡하던 유럽 국가들도 성장이 멈추자 대중주의와 진흙탕 정치싸움으로 날을 새운다.
사실 ‘상하기 쉬운 생선’은 한국의 ‘촛불혁명’과 민주주의를 에두른 것으로 들린다. 역대 정권마다 의욕과 의기양양함은 2~3년을 못 갔다. 문재인 정부도 대중의 기대와 호감이 분노와 허탈감으로 바뀌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형사고 전에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수없이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처럼, 숱한 의문과 의혹들이 쌓이고 쌓여 조국 사태에서 폭발한 꼴이다.
‘공정과 정의’인 줄 알았던 조국의 포장지를 뜯어보니 위선, 반칙, 특권이 쏟아져 나왔다. 주문착오나 배송 중 변질이 아니라 그냥 불량품이다. ‘국민(民)이 주인(主)’이면 환불해줘야 맞다. 야당 대표가 초유의 삭발로, 교수들이 시국선언으로, 대학생들이 촛불시위로 조국 사퇴를 요구한다. 국민 과반수가 잘못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밀리면 끝’이라며 국민을 상대로 싸우려 든다.
촛불을 자임한 정부가 ‘공정과 정의’의 덫에 걸려 오도가도 못 하는 모양새다. 애초에 조국 사태가 좌우 진영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임을 간파했다면 여기까지 안 왔을 것이다. 팩트가 아닌 맹신으로, 보편가치가 아닌 진영논리로 방어하는 동안 남은 건 오기와 총선 정치공학뿐이다. ‘50년 집권론’을 꺼냈던 여당 대표는 “정권을 뺏겨선 절대 안 된다”며 또 한 번 천기를 누설했다.
성난 민심에 놀라 정부·여당은 정년연장, 전·월세 연장 등 부작용이 뻔한 정책을 물불 안 가리고 쏟아낸다. ‘정의’가 실종된 정의당은 병사 월급 100만원을 꺼냈다. 국민은 어르고 달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건가. 전가의 보도처럼 ‘재벌 때리기’ 카드도 동원할 태세다. 사면초가인 외교·안보, 무너지는 경제, 미래세대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통계의 화장발’만 보면 현장의 벼랑 끝 비명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다. 이응준의 말을 빌리면 “(인문학자나 예술가가) 경제학을 어느 정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를 논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사회, 국가, 세계, 역사, 인간, 예술에 대해 헛소리를 쏟아낼까봐 두려워서다.” 정치인이야말로 경제학을 공부해야만 한다.
정치가 ‘상한 생선’이 돼가는 징후는 디지털 공론장에서도 뚜렷하다. 포털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와 댓글 추천수 조작으로 얼룩져, 뭐가 팩트이고 가짜뉴스인지 모호하다.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으니 제2, 제3의 드루킹과 매크로 흔적들까지 엿보인다. ‘디지털 대중독재’가 도래한 것인가. “진실이 신발을 신을 때 거짓은 세상 반 바퀴를 돌 수 있다”는 마크 트웨인은 이 꼴을 보고 한 말 같다.
이런 삼류 정치의 나라가 21세기 대전환기에 뒤처지지 않으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일 것이다. 생선 부패를 막으려면 소금에 절여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지식인은 짜디짠 ‘비판의 소금’으로, 국민은 냉철한 ‘이성의 냉장고’로 권력을 견제할 때 다소나마 부패를 늦출 수 있다. 역사는 늘 그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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