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에 비해 가격이 내려간 아이폰11은 중국의 평균 월 임금의 1~1.3배로 이는 (애플이 중국 소비자를 공략하기에) 최적의 가격에 가깝다."(궈밍치 TF 인터내셔널 애널리스트)
지난 11일(현지시간) 공개된 '아이폰11' 시리즈 3종에 대한 해외 IT 전문매체들은 "아이폰 가격을 내린 것이 어쩌면 이번 신제품의 최대 혁신일지 모른다"는 냉소적 평가가 많았다. 별다른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초 애플이 이번에 내놓은 아이폰 신작은 삼성전자, 화웨이 등 경쟁사들의 플래그십 제품과 비교해 눈에 띄는 장점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삼성과 화웨이가 이미 스마트폰 후면에 '쿼드(4개) 카메라'를 탑재하는 시점에 이제서야 '트리플(3개) 카메라'를 들고 나온 점, 경쟁사와 달리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주요 비판 지점이었다.
그러나 자본 시장 반응은 달랐다. 아이폰11 시리즈가 공개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애플 주가는 3% 이상 뛰었다. IT 매체들의 초기 평가와는 대조적 흐름을 보였다. 줄곧 '고가 정책'을 고수해온 애플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본격 채비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이번에 중국 시장을 공략하려고 작심한 듯하다"며 "현재 중국에 아이폰7 등 구형 아이폰을 사용하는 대기 수요가 1억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을 다시 아이폰 고객으로 붙잡아두려는 게 이번에 가격을 내린 이유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아이폰 글로벌 1차 출시국에 포함된 중국에서의 가격은 한국과 달리 대폭 내렸다.
애플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이폰11 판매가격은 64기가(GB) 제품이 5499위안(약 92만원)이다. 전작인 아이폰XR과 비교하면 가격이 1000위안 이상 내렸다. 반면 한국은 99만원으로 전작과 동일하다. 중국에서의 아이폰11프로 맥스는 8699위안이다.
애플은 이번 신제품 공개 당시 아이폰11 가격을 아이폰XR보다 50달러 저렴한 699달러(약 83만원)로 소개한 바 있다.
애플 전문가로 알려진 궈밍치 애널리스트는 "미국 소비자들은 고가 모델인 아이폰11프로나 맥스를 선호하지만 중국 소비자들에게는 기본형인 아이폰11이 더 인기 있는 것 같다"며 "중국은 미국과 달리 아이폰11에 대한 수요가 프로 등 고가 모델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이폰11 시리즈 물량 중 아이폰11의 비중이 60%, 아이폰11 프로는 10%, 아이폰11프로 맥스는 30% 수준이다.
이같은 트렌드는 중국 유통업체들의 아이폰11 초기 예약판매량에서도 나타난다.
중국 언론 디이차이징은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에서 아이폰11 발매 1분 만에 1억(위안) 규모의 사전 주문량이 몰렸다"고 보도했다. 전작 아이폰XR(보급형)보다 335%나 증가한 수치다.
중국 아이폰 최대 유통처로 꼽히는 징둥닷컴에서도 아이폰11 3종에 대한 예약판매 첫날 주문량이 100만대를 넘어섰다. 역시 아이폰XR 등 시리즈 전작보다 480% 껑충 뛰었다.
미·중 무역분쟁, 중국 현지업체들의 기술력 향상으로 나날이 하락하는 중국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애플이 가격 자존심을 굽힌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재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 4대 IT 업체가 85%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 10%를 넘었던 애플의 점유율은 최근 6% 미만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역 갈등으로 중국 소비자들이 자국 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이른바 '애국 소비'에 나선 점, 화웨이 등이 높은 스펙 대비 낮은 가격을 책정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전략'을 택한 점 등이 애플의 중국 시장 고전 이유로 꼽힌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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