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샘을 자극하는 몇 명의 영웅이 아니라 학도병 772명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최신식 장비도 제쳐두고 네 대의 카메라로 인물 하나하나를 우직하게 따라가죠. 보조출연자의 얼굴까지 다 보입니다. 그걸 보며 ‘이 어린 민초들이 나라를 지켰구나, 같은 민족끼리 총대를 겨눈 비극이 있었구나’ 하는 게 감독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걸 알았죠. 고통을 통감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참 역설적인 표현이지만요.”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하 ‘장사리’)에서 학도병을 이끄는 이명준 대위 역을 맡은 배우 김명민(사진)은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학도병”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장사리’는 곽경택·김태훈 감독이 공동연출로 만든 영화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해 같은 날 동해안의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양동작전으로 펼쳐진 장사상륙작전을 다뤘다. 작전에 투입된 학도병은 772명. 훈련기간은 2주, 평균 나이는 17세였다. 김명민은 “영화 촬영임에도 학도병들의 모습이 짠했다”며 씁쓸해했다.
영화에서 김명민은 출중한 리더십과 판단력, 따뜻한 마음으로 학도병들을 지휘하고 보듬는다. 배역에 대한 높은 집중력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관객을 몰입시키지만 영화에서 그의 이야기는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김명민은 “편집된 장면이 많았지만 학도병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라는 걸 명확히 알고 참여했기 때문에 욕심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명민은 지난 6일 영덕에서 열린 장사상륙작전 전승 기념식에 참석해 지역주민과 참전유공자들에게 먼저 영화를 선보였다. 그는 “강풍기, 포크레인, 살수차가 동원된 촬영을 하면서도 돌아버릴 지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가본 장사해변은 상륙 조건이 좋지 않아 보였다. 당시 태풍이 와서 부산에서 학도병들을 실어나른 수송함 문산호가 좌초되는 상황이었다는데 총탄을 맞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상륙했을까 싶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개봉 전 이례적으로 지방에서 시사회를 연 것은 제작진과 배우들이 이 영화에 대해 가진 사명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69년 전 바로 그곳에 계셨던 분들을 만났죠. 먼저 간 전우에게 편지를 낭독하는데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어요. 참전용사들께서는 희생이 덧없다고 느낄 만큼 이 사건이 묻혀 가슴 아팠는데 영화를 통해 이제야 국민이 알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이제야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죗값을 치를 수 있게 됐다고 말씀하셨죠.”
김명민은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되는 걸 보고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대중문화예술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을 새삼 절감했다고 한다. 그는 “문화콘텐츠는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갖고 있으므로 드라마나 영화, 특히 ‘장사리’ 같은 작품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인의 추억’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인 데다 개봉한 지 16년이 지났는데 뉴스에서 사건을 보도할 때 계속 언급할 만큼 그 사건을 잘 다루고 있어요. ‘장사리’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우리의 어마어마한 역사 한 부분이 담겨 있잖아요. 그 역사로 인해 현재 우리와 우리나라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잊혀졌습니다. 영화와 영화에 담긴 이야기가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도 회자됐으면 좋겠어요.”
김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bell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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