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시원하게 목을 넘어가는 짜릿한 쾌감을 감각적으로 기억할 것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초가을 풍요로운 이 계절에 맥주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짧은 기간에 전문적으로 맥주 배우는 비어 아카데미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날 때 장소를 미리 정한다.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일정에 맞춰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를 정하는 것이다. 매우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여행의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장소를 미리 정하는 여행보다는 콘셉트와 주제를 먼저 정하는 여행을 즐긴다. 나는 매년 한 번은 약 3주에 걸친 일정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때 여행지는 그해에 내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커피에 관심이 있던 해에는 미국으로 커피 공부를 떠났고, 치즈에 관심이 있던 해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로 여행을 떠났다. 관심이 있는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맥주를 맛보기 위해서는 어느 곳으로 가야 할까? 맥주라고 하니 독일을 떠올릴 수도 있고, 미국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맥주를 제대로 경험하고 맛보고 게다가 공부까지 하고 올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영국 런던이다. 영국으로 떠나는 맥주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짧은 기간 맥주를 전문적으로 배워볼 수 있는 비어 아카데미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 사이에서 쿠킹클래스를 통해 현지 음식을 만들며 맛보는 경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지 음식을 먹기 위해 사전에 많은 정보를 따라 맛집을 찾았을 때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은 경험 면에서도 맛 면에서도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 여행지에서 배워보며 맛보는 경험은 더 많은 추억과 기억을 남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영국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서도 할 수 있다. IBD(The Institute of Brewing & Distilling)의 비어아카데미는 짧은 기간 맥주를 전문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이다. 비어아카데미의 맥주 전문가 과정은 이틀 동안 34가지 정도의 맥주를 시음하며 맥주에 대해 배워볼 수 있다. 맥주전문가 과정은 국내에서는 볼 수 없던 맥주를 맛보고, 맥주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원재료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수업 과정이 끝나면 마치 대학에서 발행한 것 같은 멋진 문양으로 인쇄한 자격증도 준다. 추억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수료했다는 증거도 함께 추억 속에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자격증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제법 가치 있는 자격증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육기관
비어 아카데미에서 맥주를 배우던 당시 나를 포함해 30명 정도의 수강생이 있었는데 그중 아시아인은 나뿐이었고, 여성 수강생은 한 명이었다. 그 외에 대부분은 실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오픈 예정인 사람으로 업계 종사자였다. 그들과 맥주를 시음하고 맥주이론을 토의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히려 시음이라기보다는 맥주를 마신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하루에 적게는 20병 정도에 달하는 맥주를 맛보는데 이를 한 잔씩만 마신다고 해도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수업이 끝나면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호텔로 돌아가야 해서 아쉽지만 시음하면서 살짝살짝 맛보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영국과 유럽인 대부분은 그 많은 맥주를 거의 다 마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수업이 진행되던 비어아카데미 교실 벽면에는 ‘술에 취해 사고가 나면 온전히 본인 책임입니다’란 경고 문구가 있을 정도다. 수업이라기보다는 마치 맥주잔치를 벌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수업은 제대로 이뤄졌고, 전문적인 맥주 교육이었다. 여행지에 가서까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오히려 한국에서 따로 시간을 내 배우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시간도 길게 잡지 않고 하루이틀로 끝낼 수 있는 커리큘럼을 선택한다면 부담도 없을 것이다. IBD는 1886년 설립된 양조 아카데미와 1906년 설립된 양조자 길드가 합병돼 세워진 기관으로 영국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육기관이다. 영국에 이런 전문 교육기관이 존재하는 이유에는 영국이 에일(Ale) 맥주의 본고장이라는 것도 있다. 에일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청량함이 느껴지는 라거(Lager) 맥주와는 다르다. 또한 양조장에서 여과와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아 효모가 살아 있는 맥주가 바로 에일이다. 영국에서는 이런 에일이 보편적이었고, 영국 내 많은 양조장에서도 에일을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에일이 곧 맥주인 것이다. 이에 ‘에일 맥주’라는 표기보다 ‘에일’이라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렇게 영국 내에 에일이 자리잡고 있던 중 독일 뮌헨의 라거 계통 맥주가 들어오면서 에일과의 판매 순위가 바뀌었고, 에일을 찾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었다. 영국의 에일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리얼 에일만 취급하는 맥주 축제도 열려
이때 옛 영국의 에일 맛을 그리워했던 네 명의 저널리스트들이 ‘리얼 에일을 지켜라’란 철학을 바탕으로 1971년 캄라(CAMRA: Campaign for Real Ale)를 발족시킨다. 그리고 처음 CAMRA 운동의 행사에는 2000여 명이 모였다. 영국의 리얼 에일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직접 에일을 홍보하고 리얼 에일만을 취급하는 맥주 축제도 만들었다. 매년 8월 초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 올림피아에서 열리는 GBBF(Great British Beer Festival)이다. 이 축제에서는 영국의 에일을 중심으로 하고 몇몇의 해외 맥주가 참가하는데 축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마음껏 맥주를 맛볼 수 있다.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입구에서 컵을 3파운드에 구매한 후 여기저기로 맥주를 찾아다니며 마실 수 있다. 그리고 퇴장할 때 컵을 반납하고 그 금액을 돌려 받으면 된다. 나는 맥주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던 중 마침 이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수업을 같이 듣던 수강생들과 함께 직접 맥주 축제를 즐기는 행운을 누렸다. 영국에서는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즐기기보다 컵을 들고 다니며 자연스럽게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마신다.
축제에서도 독특한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맥주잔을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맥주를 즐긴다. 사람과 술이 함께 하니 흥이 넘쳐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영국으로 떠나는 런던여행이라고 하면 런던의 타워 브리지나 혹은 런던 아이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유명관광지와 이국적인 건물들 사이를 둘러보는 것도 흥미로운 여행이 된다. 여기에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는 것도 여행의 묘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맛을 넘어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은 또 다르게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영국의 맥주여행을 즐기기 위해 반드시 정규 맥주 수업을 수강하고 축제에 참가할 필요는 없다. 대신에 영국 거리 곳곳에는 펍(Pub)이 많이 있다. 영국 사람들은 교회와 학교, 그리고 펍이 갖춰져야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펍을 중요시 여긴다. 술집이자 사교장이 되고, 마을 회관의 역할을 하는 펍에서 주로 맥주를 마시며 예술을 논하고 문화를 만들어온 것이다. 이렇듯 영국에 있어 맥주는 단순히 술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곳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경험을 하는 것은 영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맥주를 통해 영국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여행방법이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여행도 개성과 차별성이 중요하다. 나만의 스타일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영국으로 떠나는 맥주여행처럼 말이다.
이장우 박사는
국내 최초의 퍼스널브랜드 소유자이자 브랜드 전문가다. 경영학, 공연예술학, 디자인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메이션코리아에서 최고경영자(CEO)로 경영v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브랜드마케팅, 트렌드, 소셜미디어전략, 디자인경영, 비자트(BIZART: 경영과 예술의 결합), 상상창조경영, 자기계발 등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세계를 여행하며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있다. 강연여행가는 여행 중에 강의하고 여행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이장우 강연여행가 thinkbrands@gmail.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