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국가통계위원회의 경기 진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정부가 경기순환을 판정하기 시작한 1972년 이후 11번째 순환기인 이번이 가장 긴 하강기가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1996년 3월부터 29개월간 하락기가 있었지만, 지금 상황을 볼 때 5개월 안에 경기가 반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이기 때문이다.
이번 장기 하강은 잘못된 정책이 부채질한 측면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2년 새 29% 오른 최저임금, 세계 흐름과 반대로 간 법인세 인상 등 증세, 무리한 근로시간 단축, 여덟 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법안 등 경기 침체를 가속화시킨 정책은 한둘이 아니다. 그 결과 재정 확대, 금리 조정이라는 단기 대응책으로는 어려운 불황에 빠졌다.
근본 문제는 국정 전반에 오진(誤診)이나 오판(誤判)이 많다는 사실이다. 경기 진단만이 아니다. 선거 공약에 매달린 정책은 ‘소득주도성장’ 등 일련의 경제정책 외에도 많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수월성을 부정하는 정책이 압도한다. 자율형 사립고 폐지나 초·중·고 학생들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둘러싼 혼선도 그런 사례다. 미래사회를 이끌 인재를 키워 나가야 할 학교 교육에 대한 전제와 기본 인식에서의 오류가 한국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진아로 만들고 있다.
안전에 대한 오해와 편향된 시각에서 비롯된 탈(脫)원전 정책도 같은 맥락이다. 탈원전 정책의 후유증은 국가에너지의 백년대계를 뒤흔들 정도로 심각하다. 그러면서도 지난주 정부는 관련 기업들을 불러 원전수출전략협의회라는 것을 열었다. 해외에서는 이를 어떻게 볼까. 현저히 약해진 대북 도발 억제력과 한·미 동맹관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같은 ‘불통 정책’도 마찬가지다. 상황 진단이 잘못되고 문제의 본질을 놓치면서 처방(대응책)도 엉터리가 된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양극화 해소 차원이라는 약자 지원도 그렇다. 임금과 고용관계, 가격과 사적계약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정책이 격차를 키우는 원인인데, 결과인 격차를 원인으로 여겨 엉터리 정책을 고수하는 식은 곤란하다.
전문가들 진단, 쓴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경제 문제로 보면 지금은 재정 동원 같은 단기 대책보다 구조개혁과 생산성 제고라는 근본·장기 대책에 주력할 때다. 물론 노동개혁, 한계산업 구조조정, 교육과 공공의 변혁 같은 과제는 어떤 정부에도 힘든 일이다. 내년에는 총선도 있어 더욱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대로 가면 L자형의 장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새겨들어야 한다. ‘D(디플레이션)의 공포’ 같은 경고가 현실화되면 정책을 전환해도 의미가 없어진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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